운동화 한 짝

운동화 추억

by 책미네랄

신발장 앞에 서면 문득 그때 그 일이 떠오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냇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운동화 한 짝.

그 작은 신발 하나가 내 마음에 남긴 파문은 지금까지도 잔잔히 번져오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검정 고무신 한 켤레가 내 발을 지켜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질기고 튼튼한 그 신발은 좀처럼 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냇가 돌바닥에 문질러대며 빨리 닳기를 바라기도 했다.

새 신발에 대한 아이의 설렘이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드디어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하얀 운동화에 줄이 그어진,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꿈같은 신발이었다. 아버지가 농사일로 굳은살 박힌 손으로 벌어주신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어난 냇가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순간 운동화 한 짝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키 작은 내가 그 신발을 잡으려고 물가로

몇 걸음 따라갔다.

하지만 거센 물살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힘들게 마련해 주신 신발이었지만,

더 따라가다간 나까지 위험해질 것 같았다. 결국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멀어져 가는 운동화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쪽 운동화만 신은 채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쓸쓸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찬물과 진흙의 차가운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아버지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막막했다.


아버지께서 꾸중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냇물에 떠내려간 그 신발이 너무 아까워서 며칠을 속상해했던 기억만 또렷하다.

그 시절 운동화 한 켤레는 우리 가족에게 결코 작지 않은 부담이었으니까.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운동화 사줄 테니 벼이삭 주워라."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열심히 논바닥을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이삭 하나하나가 새 운동화로 바뀔 희망의 씨앗 같았다.

작은 손으로 주워 담은 벼이삭들이

자루 가득 찰 때까지, 새 신발에 대한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엄마 잘 모실게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아픈 다리로 걷기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실버대학에 가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비웠다.

3개월 만의 외출이다.

어머니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냇물에 떠내려간 운동화처럼,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추억은 내 마음속에서 더욱 깊어만 간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마련해 준 신발 한 켤레에 담긴 사랑이, 지금 내가 어머니께 드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신발장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그 모든 걸음걸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그 사랑을 신고 세상을 걸어가며

엄마와 보내는 모래시계가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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