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침

어느 날 하루

by 책미네랄

꽃들 사이로 벌 한 마리가 춤을 추듯 날아다닌다.

그 작은 날갯짓 소리에

나는 문득 어린 시절로 흘러갔다.


여름날의 기억은 늘 무쇠솥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부엌에서 시작된다.

엄마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개떡의 향기,

그 안에 숨어있던 강낭콩의 달콤함이

아직도 혀끝에 맴돈다.

입은 즐겁고 눈은 반짝였던 그 순간, 갑작스러운 따끔함이 내 엉덩이를 찾아왔다.


"아야!"


어린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엉덩이는 발그레한 복숭아처럼 부어올랐다. 다행히 많이는 아니었다. 조금만.


"너는 벌을 많이 안 타나 보다?"


엄마의 말씀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벌에는 강하구나?'

그 순간부터 작은 벌들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말벌이 아닌 이상, 그들은 그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 같은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깨달은 것이 있다.

그때 우물 옆으로 벌들이 모여든 이유를. 무화과가 익어가며 흘려보낸 달콤한 신호,

벌만이 아는 길을 따라온 것이었구나.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서로를 부르고 답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96세까지 장수하신 분의 비밀스러운 건강법. 여름이면 어김없이 지게를 메고 들로 향하시던 그 뒷모습. 풀을 베러 다니시며 자연스럽게 맞이하시던 벌들의 '자연 봉침'. 할아버지도 나처럼 벌에게 크게 반응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는 벌과의 특별한 유전자 코드가 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다.

꽃밭이 그렇게 화려해도 벌들의 모습이 드물다.

예전처럼 윙윙거리며 바쁘게 오가는

그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벌들은 참 묘한 존재다.

달콤한 꿀을 선사하면서도

날카로운 침을 품고 있고, 때로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들 없이는 이 세상의 꽃들이

열매 맺을 수 없다.

마치 인생의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환경오염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편리함이 벌들의 삶터를 앗아가고, 결국 우리 식탁의 풍요로움마저

위협하고 있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지구는 점점 숨 쉬기 어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미장원에 갈 때도, 커피 축제에 갈 때도

내 컵을 챙겨간다. 미용사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개의치 않는다.


종이컵 하나, 플라스틱 컵 하나라도

덜 쓰는 것. 그것이 벌들이 다시 꽃밭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작은 걸음이라고 믿는다.


꽃에 앉아 있는

벌 한 마리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를 찌른 그 벌의 후손일까? 그때의 아픔이 지금의 깨달음으로 이어진 것처럼, 오늘의 작은 실천이 내일의 큰 변화로 꽃 피우기를...


맑은 공기가 계속 살아 숨 쉬는 세상에서, 벌들과 우리가 함께 춤추는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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