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어긋남의 미학

by 그레이스


요즘 마음이

아주 아픈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멀쩡한 것도 아니다.

계획했던 일들이 예상과 조금씩 엇나가고,

즐겁게 쏟았던 노력은

기대한 만큼의 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실망이라기엔 담담하고,

후회라기엔 아직 미련이 남는다.

이럴 때면,

마음은 어딘가 불안정한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조용한 정적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

.

타/이/밍

모든 관계와 움직임은 타이밍이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 놓인다.

그 질서는 감정보다 정확하고, 의지보다 냉정하다.


누군가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너무 일찍 문을 두드린다.

그 어긋남은 종종 관계의 파국이 되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인연이 인연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백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두 번쯤은,

분명한 호감과 명백한 다정함 속에서도

서로를 비켜 가야 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움의 감도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았던,

혹은 말했지만 늦었던 순간들.

그것들은 종종 후회라는 말로 묶이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후회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 감정은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그리움과 체념, 자책과 해방이 교차하는 무늬.

나는 그것을 타이밍이라고 불러왔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마주하기에는

너무 이르거나,

혹은 이미 늦어버린 시간.


타이밍은 어쩌면

사랑보다 더 정직한 원칙일지 모른다.

감정은 흔들릴 수 있어도,

시간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속인 적이 없으니까.


붙잡고자 한다면

그 시점에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칠고 뚜렷하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해서

그 순간을 다시 살아낼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아름답게 복원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복원력보다 훨씬 더 뚜렷한 결을 지닌다.


결국 우리는 선택한다.

지나간 타이밍을 숭배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놓아두기로.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의 부정이 아니라,

그 감정이 더는 스스로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내적인 절제다.


그 절제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배워간다.

모든 인연이 맺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


어긋남에도 의미가 있으며,

그 어긋남이 오히려

내 존재의 윤곽을 또렷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오늘도

타이밍이라는 이름의 미완을 살아간다.


그 미완 속에서만 가능한 연결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믿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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