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산책

함께 있는 다른 방식

by 그레이스


여기, 참 오랜만이다

이틀 전, 아이의 친구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놀이동산에 가기로 했는데, 우리 아이가 함께 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아이의 친구 얼굴도, 그 어머니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단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공통점 하나뿐이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로 바빴고, 아이는 아이대로 설레어서 자꾸만 연락을 해왔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정말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민스러웠다.

멀미가 심한 아이, 그리고 낯선 사람의 차를 타고 먼 길을 보내는 것도, 기대에 찬 아이를 실망시켜야 하는 것도, 어느 쪽도 편한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일거리를 노트북에 담아 에버랜드로 향하는 결정을 내렸다.


막상 도착해 보니, 근방에 작업할 만한 곳이 없었다. 놀이기구 하나 타지 않을 텐데도, 어쩔 수 없이 종일권을 끊고 입장해야 했다. 아이는 이미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주차를 마치고 입장하니 너무 넓어 금세 찾을 수 없었다. 연락도 잘 닿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헤맨 끝에, 범퍼카 대기줄에 서있는 아이를 멀리서나마 보았고, 함께 있는 친구와 어머니도 보았다. 손을 흔들었고 아이는 나를 알아보고 웃었다. 나는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다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 입구 근처의 카페에 노트북과 작업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의 많은 비로 오늘의 신선한 공기가 참 좋다.

나의 아침 산책은 여기까지.

참 비싼 산책이었다.


그러나 이 산책으로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큰아이와는 그래도 이런저런 추억이 쌓여 있지만, 둘째 아이에겐 미안하게도 함께 어딘가를 다녀온 기억이 거의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기회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선택은 결국 아이의 마음을 따라준 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이제 시작이다. 낯선 놀이동산 한가운데에서,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밀린 일들을 마무리하고, 어쩌면 오늘 하루를 오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놀이기구는 타지 않더라도, 이 하루가 내겐 작고 단단한 회전목마였기를.


그레이스님 주문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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