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 길에서

너를 만나다

by 그레이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예상보다 오전 업무가 일찍 마무리되면서, 다음 일정을 시작하기 전 잠깐의 틈이 생겼다. 그 짧은 여유가 어쩐지 소중하게 느껴져, 근처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걷던 방향이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조용한 길이 걷고 싶어서 반대편으로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보았다.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 소박하게 피어 있는 보랏빛 꽃들이 먼저 말을 건넨다. 자세히 보면 토끼풀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참 반갑다. 이름을 몰라도, 그 자리에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그리고 그 옆, 아주 반가운 얼굴의 개망초. 한때 참 좋아했던 꽃이다. 데이지를 닮은 국화류 꽃들은 늘 나에게 잔잔한 위로였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묘하게 기분을 맑게 만들어주는 꽃. 예전 함께 일하던 선생님 덕분에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개망초는 내 마음속에 조용히 남아 있는 꽃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길에서 만난 이 꽃들은 마치 인생의 틈새처럼 다가왔다. 계획에 없었던, 그러나 그 자리에 조용히 피어 있는 것들. 어쩌면 살아가면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들은 이런 예상하지 않은 풍경들 아닐까. 이름도 모르고, 미리 약속된 것도 아니지만,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삶의 자국이 되고, 위안이 되고, 버텨내는 힘이 되는 게 아닐까.

들꽃의 위안


산책로 옆으로 강물이 흐른다. 물소리는 늘 일정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매 순간 달라지고 있는 거란걸. 바람도, 물결도 지금은 멈추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유유히 흘러가는 것. 어쩌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건 아닐까. 움켜쥐지 않고, 그냥 지나가도록 두는 것. 바람처럼, 강물처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온통 레몬그린이었던 들판이 이젠 여러 빛깔의 꽃들이 손을 내밀고, 나뭇잎도 제법 짙은 초록이 되어가고 있다. 계절은 멈추지 않고 흐르듯 나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오늘 이 시간, 이 풀향기. 가끔은 이런 풀냄새가 참 좋다. 비가 내린 뒤라서일까, 더 짙고 선명한 향.


이 짧은 산책이 주는 감정의 밀도는 생각보다 크다.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 이렇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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