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치노의 속삭임

by 그레이스


조용한 공간에서 들리는 작은 공기 소리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틈틈이 재미있게 살아왔다.

일을 하면서도 빵을 굽고, 흙을 빚고, 몸을 움직였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늘 삶의 가장자리에서 나를 붙들어 왔다. 덕분에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흘러가진 않았다.


요즘은 연말의 공백 한가운데에 있다. 의도하지 않게 생긴 느슨한 시간 앞에서 속도 낮춘 하루를 보낸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날, 목적 없이 흘러가도 괜찮은 시간.


생각보다 낯설다


차와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책으로 읽고 비슷하게 만들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가끔은 기억 속 맛과 닮아 있다. 기술이라기보다 반복된 손놀림과 감각이 남긴 흔적에 가깝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커피 위에 작은 그림을 얹는 법도 배워보고 싶다.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을 배우다 보면 삶에 여백이 생긴다.

무엇인가를 천천히 만들고,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바쁠수록 가장 간단한 선택으로 흘러가게 되지만,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가장 많이 마신 커피가 가장 간편한 형태였다는 사실이,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말해 주는 것처럼.


내년에는 한 박자 쉬는 리듬을 삶에 들여놓고 싶다. 쉬는 날에도 의자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이던 습관에서, 조금씩 몸을 떼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말이다.

어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었고, 오늘은 카푸치노를 준비해 보았다. 밀크폼을 내는 일조차 번거로워 여러 번 미루다 끝내 완성한 한 잔이었다.


좋아하는 맛이 재현되는 순간, 기분이 환해진다.

삶을 다시 앞으로 미는 힘은 이런 소소한 감각들에 있다.


카푸치노 위의 시나몬 향기처럼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오랜만에 든다. 그러나 쉼은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향해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깝다. 다가올 과제들과 아직 펼쳐지지 않은 시간들을 두려움보다는 약간의 설렘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다.


한 해 동안 글을 나눌 수 있었던 공간 덕분에, 글을 잇는 시간은 더 단단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진문장들은 은은한 향기로 남아 있다.

그 향기를 간직한 채, 다음으로 나아가는 해를 맞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