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는 일

by 그레이스



몇 해 동안 요리에 마음을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제육볶음을 준비하며 파와 양파를 썰었다. 서툰 칼질 끝에 왼쪽 네 번째 손톱 위로 칼날이 살짝 스쳤다. 저녁이 되어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낮에 남긴 칼날의 흔적이 유독 눈에 걸린다.


세제 용기가 바뀐 탓에 섬유유연제인지 세제인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글자를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세제라 짐작하고 섬유유연제를 부은 뒤에야, 옆에 놓인 세탁세제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한 가지 일에 깊이 함몰되어 있었는지, 엉뚱한 세제 통을 붙잡고서야 알아차렸다.


집안일은 잠깐 반짝이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제자리를 유지하게 하는 일에 가깝다. 그 평범한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식사를 챙기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면 다음 식사 시간이 멀지 않다. 고기반찬이 빠지면 서운해하는 아이들 앞에서, 매 끼니는 정성이라기보다 치러내야 할 노동에 가깝다.


직장생활 하나만, 혹은 가정이나 공부 하나에만 전념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려본다. 올겨울은 유난히 감기가 잦다. 큰 프로젝트를 하나 매듭지은 사람답지 않게, 몸은 자꾸만 쉽게 방전되었다. 부지런을 한껏 끌어올려 하루를 버텨내고 나면, 다시 몸살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잘 감당해 왔다고, 잘해왔다고 나 자신에게 나직이 말을 건넸다. 이제는 무조건 견디라고, 끝까지 버티라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나를 조금 더 좋은 곳에 두고, 좋은 것을 보게 하려 한다. 늘 누르고 감당하는 쪽만을 선택해 온 끝에, 한꺼번에 소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만히 되짚어본다.


앞으로는 타인을 안아주던 그 팔로, 나를 더 자주 안아주기로 했다.


나는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