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기울기

by 그레이스



아직 달력은 겨울인데, 햇빛은 이미 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낮이 길어지며 빛이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고, 한파가 물러간 자리의 공기는 전보다 부드러웠다. 바람이 멎은 정오, 햇볕이 바닥 위에 고이듯 번지자 몸이 먼저 느슨해졌다.


겨우내 어깨는 움츠러 있었고, 손은 주머니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몸은 오래 접어둔 종이처럼 구부정히 접혀 있었다.


모자와 스카프를 두르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은 두꺼운 옷을 벗기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몇 걸음 지나 옷을 열었다. 조금 더 걷다가 외투는 팔에 걸렸고, 옷자락이 걸음걸이에 맞춰 가볍게 흔들렸다.


반바지와 반팔 차림의 남자가 앞을 가로질러 갔다. 가벼워 보이는 그의 몸과 종아리에 햇빛이 환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를 스쳐 지나며 소매를 한 번 더 걷었다.


얼어붙었던 땅은 녹아 조금 질척였으나, 그 틈 사이로 초록이 올라와 있었다. 가지 끝마다 작은 팽창이 맺혀 있었고, 계절은 누구의 사정도 묻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속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햇빛이 얼굴에 닿자, 겨우내 굳어 있던 근육이 풀드리듯 몸이 이완되었다. 깊게 들이마신 숨이 등줄기를 따라 얇은 땀으로 흐르고, 몸은 더 이상 웅크리지 않았다.


걷다가 모자를 들어 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맑고 높았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봄의 숨결이 나를 스쳤다. 얼어붙었던 감각이 서서히 열리고, 마음속에 겨우내 잠든 자연의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부드러운 탄력을 느끼며, 나는 마침내 조용히 다음 계절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봄,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