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안정적으로
얼마 전, 사용하던 휴대 전자기기의 보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혹시 모를 이상을 미리 점검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내가 가입한 애플케어는 우발적인 손상에 대비하는 서비스다. 수리 비용이 큰 전자기기를 살 때 많은 사람이 보험처럼 선택하듯, 나 역시 늘 함께 들었다. 막상 혜택을 쓸 일은 거의 없었지만,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미리 준비해둔 보험조차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한다. 점검 중 블루투스 기능 이상이 발견되었다. 수리비는 상당했지만, 보험 덕분에 추가 비용 없이 새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뜻밖의 안도감이 찾아왔지만, 기쁨보다 먼저 정든 기기를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이 스쳤다. 블루투스를 자주 쓰지 않아 그대로 계속 쓰고 싶다는 미련이 남았다. 결국 데이터를 백업하고 새 기기를 손에 쥐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물건이 지니는 정서적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나만의 특수한 감정이 아니다. 미국의 소비 심리학자 러셀 벨크는 사람들이 물건을 통해 자신을 확장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소유 행위조차 단순한 필요 충족이 아니라 정체성과 정서적 안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완전하게 느낄 수 있다.
팬덤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덕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팬들은 특정 연예인이나 캐릭터의 동일한 굿즈를 여러 개 소장하며, 하나는 장식용, 하나는 실사용용으로 나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마음의 안심과 만족을 확보하려는 심리적 장치로 볼 수 있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행위는 단순 과소비가 아니라, 좋아하는 대상과의 정서적 연결을 유지하고 안정감을 얻으려는 전략적 행동으로 분석된다.
나 역시 특정 스타를 향한 팬덤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두 개씩 곁에 두는 습관이 있다. 물건을 고를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을 준 것은 되도록 오래 쓰고 싶다. 잔고장이나 재구매에 시간을 쓰는 일이 번거롭고 아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마음에 드는 물건은 고가가 아니라면 꼭 두 개씩 챙기게 되었다. 이는 잃어버리거나 단종되어 다시 구하기 어려워질 때 느낄 상실감을 미리 방어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일상 속 작은 물건이 주는 안정감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며칠 전, 아이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자동 우산을 잠시 가지고 나갔다가 잃어버린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여분이 있어 바로 건넬 수 있었다. 그 순간, 작은 도구 하나가 생각보다 큰 안심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의 사소한 물건이 주는 안정감이, 예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도 느꼈다.
얼마 전 쇼핑 중, 마음에 쏙 드는 모자를 발견했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한참 고민하다, 결국 같은 디자인으로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실제로 쓰기 위해, 나머지 하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나만의 보험처럼 남겨두었다.
결국, 특별히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물건을 두 개씩 갖는 일은, 수리나 재구매가 어려웠던 경험들이 알려준 작은 염려를 미리 다독이는 나만의 방식이다. 기기 보험이 기계적 결함을 책임진다면, 내 작은 습관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살피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