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다

by 서재진

내 인생에 흠뻑 비 맞은 적이 세 번 있다. 중학교 때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리는데 우산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은 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새 스며든 빗물이 수도꼭지 새는 것처럼 손잡이 잡은 팔꿈치로 주르륵 떨어지길래, 아무렇지도 않게 빨래처럼 비틀어 짜고는 머쓱하게 앞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 번째는 유학 때였다. 자정이 다 되도록 실험실에 있다가 기숙사로 걸어가는데, 억수로 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캠퍼스의 Beebe Lake 작은 폭포 다리를 건너는데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떨어지는 폭포와 폭우 소리를 벗 삼아 목놓아 울었더랬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레퍼토리,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리 고단하게 사는가 하며 신세한탄을 했다. 복잡 미묘한 감정 섞인 눈물이 내리는 소낙비와 때마침 자정 넘어 인적이 드문 틈을 타 봇물처럼 터져 나왔으리라.


두 번 다 어쩔 수 없이 맞은 서글픈 비였다.


코로나가 터지고, 죽기 살기로 걸었다. 2021년 5월 28일 오후 5시경 잠깐 난 틈을 타,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빨리 걷기 시작하는데, 금세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 비를 다 맞는데, 서글프지 않았다. 자청해서 맞은 비였으므로. 혹시라도 몸의 온도가 떨어져 감기 들지 않도록 발걸음을 재촉했다. 몸에서 나오는 온기가 비와 어우러져 앙증맞은 아지랑이가 되어 날아갔다.


중학교 때 어쩔 수 없어서 맞은 비, 유학생활 고단하고 외로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맞은 비, 중년에 필사적으로 살고자 달려들어 맞은 비. 세 번 모두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였으나, 그걸 맞는 나의 속사람은 달랐다.


결국 인생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해석 중심이다라는 말이 뼛속 깊숙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폭우를 예고 없이 맞을지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보화를 캐내 듯 그 속에 숨겨진 뜻을 찾아내려 노력하련다.


2024년 10월 14일

추신: 2020년 8월 28일 오후 5시 38분 집 근처 Notoway Park에서 폭우를 맞으며 찍은 사진을 첨부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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