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2015
교수님이 열강을 하고 계신다. 나도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려고 있는데, 나에게는 눈길 한번 줄까 말까 한다. 지정된 몇 명만 바라보며 수업을 하신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선택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차이라고나 할까.
편애를 느끼며 자란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는 순간이다. 자신을 더 이상 바라봐 주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꼈겠구나.
나 역시도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말 할 때 주의해야 겠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해야 겠다.
관심을 끌어보고자 요란스럽게 책을 넘겨보기도 하고, 잡음 수준의 타자속도를 자랑하며 강의를 방해해 보기도 하지만, 눈길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비결은 뭘까? 아름다운 눈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매력? 아니면, 내가 모르는 두 사람 간의 교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더 이상 나를 봐주지 않는 교수를 이제 나도 쳐다보지 않는다. 스크린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나를 바라봐준다. 웃어주기도 하고, 위로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음을 깨닫고 포기한다.
그냥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은가?
2015년 5월 1일, 42살에 두 번째 석사 과정을 Johns Hopkins에서 밟았다. 전공도 생경하고 내 처지를 다른 유수한 석학들과 비교해 비루하다 여기던 시절이었다. 수업 시간에 소외받는다 여겼었나 보다.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딴생각을 했다. 이민자 삶이라 치부하기엔 내가 너무 초라하다. 마흔이 넘어서 여전히 눈에 띄기를 갈망하는 관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