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걸 교감선생님의 '학교 내부자들'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으로서 '학교 외부자들'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페북에서 서평단 모집 글을 읽었을 때 손들었던 이유도 꼭 읽고 싶었던 책에 저자 서명을 해준다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외부자가 된 지 4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을 펼쳤을 때 혹시 불편한 부분은 없을까 나도 할말이 있는데 라고 생각할 만한 부분은 없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교 내부자들'을 읽을 당시 나는 학교 내부자였고 공감가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십여군데에 밑줄을 그을 만큼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던 지라 '학교 외부자들' 역시 그러할 거라는 마음도 있었다.
학교 외부자도 본청과 지원청, 직속기관 등 어디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학교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나 지원업무에 대한 체감온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직속기관에서 오래 전 파견교사를 1년 했었고 지원청에서 2년 반, 본청에서 1년 반 째 일하고 있다. 학교를 가장 가깝게 지원하는 곳이라면 내게는 지원청이었다. 코로나19 상황이라는 특수성도 있었겠지만 자유학기, 교육과정, 수업, 평가, 학생부, 전학공 등의 업무를 모두 하면서 지원청 소속 중학교들의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 연구부장님과 매일 질의응답을 나누고 소통해야 했다. 담임학교의 민원 처리를 위해 학교방문도 해야했고 학교 감사도 1년에 2~3번 가다보면 학교와 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본청에서는 업무가 달라지다보니 지원청만큼 가깝게 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핵심은 학교가 원하는 지원을 하고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지원청이나 본청이나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스스로 옳게 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곤 한다. 학교 외부자의 업무의 목적은 학교의 지원이어야 하고 지원의 대상은 학생, 교사, 교육공동체여야 한다고 본다. 그 본질을 바쁜 일상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오는 끊임없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 외부자는 학교 내부자들과 계속적으로 소통의 끈을 가져야 한다.
현장과 공문으로 하는 대화, 메시지로 하는 대화, 유선으로 하는 대화 모두를 소통으로 만들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학교외부자들'에서 지적한 불통의 요소들의 저변에는 '사람에 대한 예의' 없음이 아니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고, 현재 너무 바쁘다고, 현재 맡은 업무가 너무 중요하다고 예의를 지키지 못함의 이유를 삼을 수는 없다. 어쩌면 한나 아렌트의 '무사유'라는 죄가 교육현장에서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말일까? 우리는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일하는 데서 '악의 평범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알고 있다. 학교 외부자들이 악한 행위를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명령복종과 의무 완수의 원칙을 따르기 앞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학교 내부자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학교 내부자들'과 '학교 외부자들' 모두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받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기준이나 원칙과 다르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서 예의 없게 굴어도 안된다. 이 원칙은 교직원, 교장, 교감, 장학사, 교육공무직, 학부모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부분이다. 결국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우리의 최종 목적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