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자
태국 국제교류 사전답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봤다. '어른 김장하' -- 다큐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는 별 생각없이 클릭했다. 그러나 정말 많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펑펑 울면서 영화를 봤다. 진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 '어른 김장하'를 보며 어렸을 때 만났던 여러 좋은 어른들이 생각이 났다. 어려운 우리집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공부 잘한다며 용돈으로 만원짜리를 쥐어주시던 동네 어른들부터, 나의 부모님을 보고 나를 판단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보고 나의 미래의 가능성을 격려해 주셨던 고등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만났던 선배 선생님들, 전문직 선배님들...
내 아버지는 한글을 잘 읽지 못했고, 엄마는 늘 아팠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딸이었다. 명절에 친척집을 가면 나는 늘 그 불쌍한 부모 밑에서 밝지 않은 미래를 안고 있는 어려운 집 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따뜻함 보다는 불쌍함이 많았고, 그들의 대화에서 우리 가족에 대한 경멸과 자신들의 우월함을 확인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척집을 가야 하는 명절이 너무 싫었다. 특히 명절에 그들을 만나 불편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싫었다. 어려운 집 딸이 그래도 공부를 잘한다는 평판을 들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들은 늘 나더러 그런 집안에 태어나서 아깝다고 말했지만, 내가 학업을 순조롭게 잘 이어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 김장하'의 영화에서 마음이 뭉클했던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한 지역 어른이 지역의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대학 등록금까지 내 주었다는 것. (그 아이들에게 대학은 곧 자신의 비루한 자리를 박차고 올라갈 기회의 사다리였을 것이다)
중3때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얻은 질병으로 희망퇴직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상금은 없었다), 엄마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친척들은 내가 상업계 고등학교만 얼른 졸업하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절망 속에서 막연히 꿈을 꾸었다. 언젠가 돈 많고 멋진 키다리아저씨가 짠 하고 나타나 나를 도와주기를!!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부모님께 억지로 우겨서 입학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대책 없이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첫 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알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따뜻하고 기회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성적장학금, 동문회 장학금과 과외교사 수입으로 빈곤하지만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4학년 졸업과 동시에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해 교직에 바로 들어오게 되었다.
대학에 다닐 때 나와는 태어날 때부터 출발점을 다른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소속된 영문학과에는 유독 강남8학군, 외고 출신 친구들이 많았다 한 70% 쯤?) 그 친구들은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어렵게 성취한 것들, 좋은 어른들의 호의로 얻었던 것들을 이미 충분히 당연하게 누려왔고 더 많이 누리고 있었다. 방학 때 마다 여행가고, 스키장, 놀이공원 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들을 대놓고 부러워 하기에 나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공부와 노동으로 정말 바쁘게 살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좁은 기회의 문을 넓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난한 가정 환경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울 기회'다. 가난한 환경에 있더라도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좋은 어른, 좋은 배움을 만나지 못하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자신의 출신 배경,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좋은 어른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너그럽게 보는 법을 배우고 좀 더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살면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학 때 인도 UESI 교환학생으로 가서 만났던 여러 인도 간사님들, 인도로 교환학생 간다고 했을 때 물심양면 후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 교회 어르신들,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석사과정 유학생활 때 가난한 유학생의 먹고살 것들을 챙겨주셨던 미국의 교회 어르신들과 목사님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재능과 발전 가능성을 보아주셨던 학교 선생님들, 사회생활에서 만난 멋진 교육계 선배님들, 여러 단체에서 기관에서 사회 각지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계신 훌륭한 어른들...
공통적으로 그들은 베풀되 잘난 척 하지 않았고, 가르치되 지배하려 들지 않았다. '어른 김장하'처럼 물심양면 지원한 후 기억하지 않았고 그저 좋은 본으로, 끝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늙어가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그 어른들에게 고마운 것은 내게 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을 보며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셨다는 부분이 특히 더 고맙다. '어른 김장하' 영화도 어쩌면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이 영화가 몹시도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