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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최 Jul 23. 2018

특목고의 특별하지 않은 영어교육

시민교육을 시작하다

나는 어쩌다 특목고에 8년째 근무하게 된 그저그런 영어교사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특수목적고, 외고에서 5년, 과학고에서 3년째 영어를 가르쳐 왔다. 외고 마지막 2년은 인문학교육에 미쳐서 세익스피어, 마키아벨리, 아담스미스 등 유명한 사람들의 읽기도 어려운 책들을 동아리학생들과 읽어보겠다고 몸부림쳤다. 짧은 지식을 길게 늘려서 멋있게 보이게 세익스피어 주간, 마키아벨리 주간 등 다양한 인문학 주간을 학생들과 이벤트 형식으로 운영해보기도 했고 200페이지 넘는 인문학 서적 소개 문집, 학생들의 독후감 문집을 교육부, 교육청 목적사업비를 끌어다가 발간하기도 했다. 


외고에 이어 과학고에서 근무해야겠다는 원대한 인생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공립학교 교사라면 5년마다 옮겨다녀야하는 상황에서 우연히 과학고에 있던 친구가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운좋게(?)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과학고는 외고와는 아주 다르고 내가 외고에서 했던 어떤 교수학습 경험도 이 새로 옮긴 학교에선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는 불과 2주가 걸리지 않았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영어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했다. 가끔 일반고 방과후 수업 강의 가면 과학고 학생들과 달리 비교적 높은 영어실력에 칭찬샤워를 해주고 온다.

이 학교에서 영어교육은 세계시민교육으로 통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2012년에 글로벌교육우선구상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언급했다거나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서 '세계시민교육'이 한국교육의 화두로 떠올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학교주변엔 별로 없다. 그렇지만 세계시민교육이 과학고에 필요하고 세계시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시민이라도 영어시간에 만들어달라는 타교과 샘들의 농담반 진담반 말들은 이공계열의 똑똑한 과학고생들이 시민성의 '싸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뜻일 수도 있다.  


과연 과학고생들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부족한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공계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될 이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공감능력이다. 인성이 나쁜 것은 아닌데 늘 문제풀이와 실험만 해서 그런건지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을 별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나는 저 문구를 알기 전에 이미 세계시민교육의 다양한 주제, 즉 지속가능발전, 인권, 문화다양성, 성평등 등을 주제로 학생들과 영어교육과정을 재구성해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학생들의 관심사와 취약한 역량을 사전조사하고 학교교육목표에 맞추어 학교가 추구하는 '창조융합형 인재'를 만들기 위해 영어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교육내용과 교수학습방법을 재구성한뒤 수업과 평가, 기록을 일관성있게 계획하였다. 말하기 수행평가에 프로젝트 2개를 포함시킴으로써 소그룹 토론활동과 문제해결활동을 통해 교과서 내용에 나왔던 적정기술을 고안해 발표하고 보고서 쓰기 활동 등을 실행하였다. 인권수업과 드라마 활동을 결합해 리더스 씨어터 대회를 열고 수행평가에 함께 반영하였으며 프로젝트 활동을 개인별 교과세부특기사항에 기록해 학생들의 성장 기록을 남겼다.


'시민교육'-- 왜 시민일까? 한경구 교수의 "SDGs 시대의 세계시민교육 추진방안"에 의하면, 국민은 '근대국가를 전제로 하는 국가의 구성원'을 뜻하지만, 시민은 '사회의 주체인 동시에 가치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시민교육은 개별 시민의 시민성을 함양하는 교육,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양을 갖추고 민주적인 정치과정에 참여하며 사회와 개인의 상호작용에 자율성과 책무성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개인발표보다는 소그룹협력활동이 활성화되고 학생 주도적인 프로젝트 활동이 수행평가에 반영됨으로써 학생들은 민주적인 정치과정, 협상을 통한 협력적 의견도출을 연습하게 되고 함께 도출한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함께 책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가르치면 과연 바람직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확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난 3년을 세계시민교육을 영어과 교육과정에 도입할 수 있었을까? 교육의 성과는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학생들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교사의 확신과 헌신은 시민교육을 앞으로도 쭉 가능하게 할 것이다. 시민교육이 과학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처럼 아마 다른 학교들에서도 그 학교 맥락에 적합한 방향으로 필요할 것이다. 시민은 민주공화국 모든 곳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계시민교육을 학교교육의 맥락에서 어떻게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에 일관적으로 도입했는지 이야기를 차차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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