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그냥 ‘미워하는 이를 미워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라고 결론을 내렸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그건 상담사가 되겠다는 자의 자세로는 맞지 않을테니까. 요즘 나의 버릇은 목록 만들기인데, 이 주제 또한 미완의 과제 목록에 추가했다. 제목은 이러하다. <유독 그를 미워했던 이유 찾아내기>. 그의 어떤 면이 나의 어떤 면을 건드려서 내가 이토록 괴로워하면서도 그를 평온하게 대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야 한다. 5개월 넘게 매달렸으나 이거다 싶은 답을 아직도 못 찾았으니, 장기 과제 목록으로 넘긴다. 장기 과제라 함은 당장 답을 찾으려 애면글면 속 끓이지 말고, 다음으로 미룬다는 뜻이다. 문득 생각날 때인, 그 언젠가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이렇다. 그에 대한 생각으로 짜증이 솟구칠 때 일단 적었다. 내가 느끼는 뭐가 됐든, 써 내려가 보았다. 목록엔 그의 단점이 와르르 쏟아졌다. 정확히 말해 그의 단점이라기보다, 내가 싫어하는 그의 면면이 주룩주룩 열거된다. <목록 쓰기> 작업 자체는 좋다.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후련함이 찾아오니까. 후련함도 잠시, 이 목록의 실효는 없다. 왜냐면 이렇게 되면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다음엔 초점을 옮겨야 한다. ‘그’에서 ‘나’로. 그가 문제다, 라고 답을 고정하는 순간 해법과도 멀어진다. 그에게 열쇠를 쥐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라진다. 그에게 돌린 화살을 힘겹지만 180도 돌려 나에게로 향해야, 비로소 과제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 전까지는 워밍업이랄까. 이렇게 본격적으로 해법을 찾아 뛰어들기 전, 나에겐 일단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뜨거운 惡 감정 속을 허우적거릴 때는 화살이 자꾸만 밖으로 향하니까, 이게 조금 식을 때까지 나에게 시간을 주고, 그 다음에 나는 대체 왜, 그런 면을 싫어했는지 하나씩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새로운 눈길을 주어 관찰하기. 내 안에서 벗어나 밖으로 한 걸음 나가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어렵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때로는 너무 괴로워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의 성과는 나에게 정말 크니까.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한 걸음이 되기도 하니까.
나의 내담자가 찾아와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고,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런 매뉴얼을 전하고 싶다.
1. 그를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해 본다.
아마 안될 것이다.
2. 그를 마주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을 회피할 현실적 방법을 찾는다.
쉽지 않지만, 뭐가 되었든 미약하게라도 있다. 그 미약한 도움거리들을 쌓아 올려 나를 방어한다.
3. 그리고, 조금 식히는 시간을 갖고, (이 시간에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한다. 준비의 시간이다. 나를 몰아칠 시간이 아니라) 그 뒤 이유 탐색에 들어간다.
혼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에겐, 내가 필요하다. 공감을 백 만 번 해줄 상담사,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