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만 할 때
<미원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편을 쓰고 얼마 뒤 결단을 내렸다. 그만 포기하기로. 한 사람에 대해 품은 감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 그 명징한 진실을 외면하며 그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게 노력으로 되는 거였으면 우리 사는 세상이 이토록 차갑고 뜨겁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인정하는 것이지, 교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내담자에게 늘 말하건만, 정작 나에겐 안되는 걸 하라고 혹독하게 다그쳤다.
나의 문제이든 그의 문제이든 상관없이, 이런 마음으로 협업하는 것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 그리고 나에겐 선택지가 있다. ‘죄송합니다만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었다. (프리랜서의 장점 하나 발견!) 다른 선택의 여지를 지녔다는 것에 감사하고 조용히 떠나기로 했다.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나의 깜냥이 지금은 이 정도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이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고 나가 떨어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사람 하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접는다는 건 어리석거나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가 나에게 그만두라고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거다. 그러니 화낼 일이 아니라 감사히 여길 일이다. 버거운 관계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해 마냥 감내하며 속앓이를 드글드글 하면서도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면 난 다른 선택지를 지닌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상담사도 모든 내담자를 일으킬 수는 없다. 현명한 상담사는 때로 자신의 역전이가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면 내담자를 다른 이에게 넘긴다. 그것은 무책임한 회피도, 상담사의 자질 부족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이의 지혜로운 대응이라 말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조용히, 패배라 이름 붙이지 않고 ‘아닌 건 결국 아닌 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다른 새로운 관계를 위해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뒤엔 나의 결정을 지지하고, 믿어주기로 했다.
마음이 가볍다. 이제야 밥이 넘어간다. 그간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스트레스에서 놓여나니 알겠다. 그와 함께 일하며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자주 머릿속으로 한 장면을 그렸다. 탁 트인 한강 둔치에서 자유롭게 달리는 나의 모습.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발엔 가벼운 러닝화를 신고 그보다 더 가볍게 탁탁탁 바닥을 차며,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고 싶었다. 그만큼 갑갑하고 힘겨웠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바위덩이를 놓았다. 어서 나가서 이미지로 그려온 나의 모습을 구현할 때다. (잠깐, 내가 상상한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기 위해선 예쁜 러닝화와 운동복을 먼저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