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만난 그녀.)
첫 상담은 11시 시작이었다. 그보다 13분 늦게 도착한 J는 화가 나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건 질색이라며 문을 들어선다. 길을 한참 헤맸다고 했다. 그래서 늦은 거라고. 건물을 착각하고 옆 건물에서 한참 찾았고, 전화를 걸었건만 연결되지 않았고, 그곳 복도는 캄캄하고 음산했다고.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하고 도움을 청했건만, 퉁명스럽고 성의 없는 대답뿐이었다고.
돌봄이 필요해 상담을 신청했지만, 자신은 상담에서조차 케어는 커녕 여지없이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다며, 늘 이런 식이라고. 마스크가 얼굴을 덮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눈빛만으로 얼마나 화가 났는지 투명하게 느껴졌다.
어정쩡하게 서서 그를 맞이하고, 등 뒤로 문을 닫으며 의연하게 눈을 마주 보았지만, 뱃속의 쿵쾅거림이 귀에 울렸다. 이런 시작이라니 당혹스럽다. 늘 답답한 마스크가 이런 순간엔 감사하다. 두 눈동자 만으로는 마음이 읽히지 않을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나는 상담사니까 쉽사리 동요하면 안 된다. ‘차분하자. 그래, 일단 공감.’ 상담 매뉴얼을 되새긴다.
“늦는 걸 싫어하시는데 상담소를 찾느라 헤매면서 초조하셨겠네요. 전화도 연결이 안 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니 화가 나셨군요. 그렇겠네요, 정말.”
답이 없다. 마른침이 꼴깍 삼켜진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역시, 답이 없다.
상담이 순조로울 것 같지 않다. 그는 어떤 말에도 전혀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책상 위 상담 신청서를 흘깃 보더니 내 쪽으로 도로 밀어 둔다.
“지금은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 작은 행동에서 상담사는 읽는다. 아무래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간혹 상담이 기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때에는 무작정 굽혀 주고 져주는 게 맞는 때가 있고, 또 다른 때에는 내가 화받이나 욕받이로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을 보여주려, 호락호락당하지 않아야 하는 때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하기 힘든 순간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화가 난 상태로 상담이 가능할까요?”
묻는 J.
눈을 깜박이지 않고 내 눈을 오래 바라본다. 받아치듯 눈빛을 피하지 않았지만 몸이 반응한다. 왼쪽 관자놀이가 쥐어짜듯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으아, 센 상대다.
“어떨 것 같으세요? 이 상태로 상담이 가능할까요?”
“지금 회피하시는군요. 제가 물었잖아요, 선생님.”
“그 답은 선생님이 아실 것 같아서, 질문을 돌려 드렸어요. 회피라기보다는, 반영이죠.”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칭하며 이건 명백히 기싸움이 되어 가고 있다. J는 다양한 상담 용어를 구사하며 나를 간 보고 있다. 자신이 만만한 내담자가 아닐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나도 치료가 필요하지만, 선생님도 치료 좀 받으셔야겠는데요? 제 질문에 대답을 안 하고 왜 자꾸 돌리세요?”
결투 신청. 속에서 발끈하는 나를 느낀다. 이 싸움에서 질 수 없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J에게 선택지를 주기로 한다.
“세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째, 상담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상담사와 상담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조치해 드릴 수 있어요. 혹은 둘째로, 이 상담이 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상담을 못 하겠다, 하면 지금 그냥 그만하실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이 시간에 한 번 기회를 주자, 하고 지금 상담을 시작하실 수도 있어요. 저는 세 번째를 추천하고 싶지만, 선택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긴 침묵.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았다. 이런 깊은 눈 맞춤을 얼마 만에 해보는 것일까, 싶을 만큼 오래. 이번엔 눈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대답을 기다리는 응시였다. 그가 1번이나 2번을 선택한다고 해도 상처 받지 않겠다고 나를 다독이며 그의 눈을 보았다. 3번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해도, 강요할 수 없음을 아는 담담한 기다림을 담아.
상담실 안의 공기도 숨을 죽인 시간. 얼마나 흘렀는지 궁금했지만, 시계를 바라보는 모습이 오해를 살까 싶어 J만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드디어 입을 연다.
“제가 A대를 다녔거든요. 거기 정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캠퍼스가 나뉘어요. 왼쪽은 이공계, 오른쪽은 문과대. 저는 왼쪽으로 들어서고, 오른쪽은 영문과 뭐 이런 애들이 가죠. 오른쪽 길로 꺾는 애들 중에, 그런 애가 있어요. 슬랙스에 블라우스를 입고, 책이 안 들어가는 작은 핸드백을 들고 오는 애들. 그냥 곱게 자란 테가 나는 그런 애들. 난 세상 낙오자로 살아가는데, 세상 귀하게 큰 티를 내며 학교 오는 애들. 그 애들을 보면 그렇게 화가 났어요, 저는 학대받으며 컸거든요.”
불쑥 큰 덩어리를 던져주니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상담실에서는 바깥세상에서 쉽게 말 못 하는 내밀한 이야기가 뜨겁게 장전된 로켓처럼, 아니 5, 4, 3, 2, 1도 없이 앉자마자 발사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렇게 벌컥 들어올 줄은 몰랐다. 자신의 부모에 대해 첫 만남에서 학대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올리는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뜬금없는 대학 시절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어리둥절하다.
나를 보며 그 문과대생을 떠올렸다고 했다. 동시에 이 상담자는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일 거라는 본능적인 감이 왔다고. J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무슨 소리냐고! 나는 바로 그 슬랙스인들을 한없이 미워하며 언덕길을 오르던 쪽이라고! 그의 말을 끊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우스웠다. 슬랙스에 블라우스, 작은 핸드백으로 그가 부르는, 뭉뚱그려진 이미지의 그들을 알겠어서. 또 그런 이들을 휙 지나치며 애써 눈길 주지 않으려 자존심을 부리다가 강의실에 들어서면 나로 모르게 그 뒷자리에 앉아서는, 어느덧 슬며시 그 고운 옷과 냄새와 가방을 관찰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러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의 나는, 그 슬랙스인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마구 휘두르며 나 자신에게, 혹은 그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J의 눈에 내가, 내가 한때 시샘하던 대상으로 보였다는 것은, 나에게 묘한 쾌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서글픔을 주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상대를 단정 짓고 판단하며 멋대로 거리를 두는가!
그가 말한다. “그런데 이게 투사더라고요, 선생님. 선생님은 반드시 그 아이와 같은 사람일 수 없을 텐데 말이죠.” 투사며, 방어, 회피 같은 상담 용어를 동원하며 자신을 설명할 줄 아는 J는 이미 자기 분석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그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나는 J가 좋아졌다. 이런 발가벗은 마음을 첫 상담에서 불쑥 말할 수 있는 J가 이미 맘에 든다. 나는 상담을 합네, 하면서도 선뜻하지 못할 이 순수한 고백을 거리낌 없이 던질 수 있는 그는 얼마나 담대한가, 감탄한다. 대찬 그가 징그럽게 사랑스럽다.
그래도 나는 J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오게 하고 싶었다. 눙치지 않고 확인한다.
“그래서, 몇 번을 선택하시겠어요?”
“선생님. 제가 이 얘기를 왜 했겠어요? 답을 모르시겠어요?”
“모르겠는데요. 저는 단순해서요. 직진으로 답을 해야 알아요. 돌려 돌려 말하는 거 펴서 듣는 거 못해요. 1번이에요, 2번이에요, 3번이에요?”
“허, 참. 3번이요.”
됐다. 나는 선택받았다. 별로 맘을 터놓고 싶은 인상을 가지지 못한 상담사에게, 그는 기회를 주었다. 용기를 내어, 상담을 받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그의 상담사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첫 만남부터 숨김없이 보여준 나의 내담자. 온몸에 가시를 달고 다니는 듯 보이는 그와, 나는 이제 상담을 시작한다. 내가 그의 몸에 붙은 모든 가시를 떼어내줄 수 없음을 물론 알지만, 다만 몇 개라도 나와의 부대낌 속에서 떨어져 나가길, 그래서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나는 포기하지 않고, J의 가시를 기꺼이 만져볼 것이다. 정성 어린 손길로 하나씩, 하나씩.
(각색된 이야기입니다만, 연관이 있는 내담자의 동의 하에 올린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