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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Aug 22. 2021

글쓰기에 대하여

쓰다 지우길 반복하는 밤

글쓰기에 대하여1.

글을 써 보겠다고 컴퓨터를 켠다. 마땅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비유는 식상하거나, 어색하다. 닮고 싶은 책들을 꺼내 무작정 다시 읽는다. 이런 감성이, 이런 적확한 비유의 기운이 내게도 조금은 스미길 바라며.

......

오늘밤은 아무래도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일의 운을 믿고 잠자리로!


글쓰기에 대하여2.

가벼운 글을 쓰고 싶다고, 가볍게 마음 먹자고 생각했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말야, 너무 가벼우면 활자로 붙어 있지 못하고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아. 아무래도 조금은 무게를 지녀야 하지 않겠어? 욕심이 스멀스멀 또 찾아온다.

그래서 나의 글은 또 길어지고 무거워진다. 지루하고, 뻔하고, 쓸모없이 진지하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아무도 읽지 않겠군. 오늘도 포기.     


글쓰기에 대하여3.

나는 두렵다. 나의 이야기가 전혀 귀 기울일 가치가 없을까 봐. 어느 작가의 떡볶이에 대한 글을 읽다가 마구 부러워져 버린 적이 있다. 시덕시덕 떡볶이 먹는 얘기를 하면서도 ‘내 얘기 궁금하지?’라는 자신감이 글 곳곳에서 풍겨 나와서. 이미 독자를 확보한 자의 자신감. 나랑 통하는 상대가 거기 딱 있고, 그와 이미 여러 번 교감을 나눈 자의 여유. 나의 글이면 꼭 찾아 읽는 팬층을 확보한 작가의 으스댐. 그런 게 보여서 얄미웠다.(그러면서도 끝까지 재미있게 그 책을 읽었다 흑.) 그러니 나는 오늘도 한 줄도 써지지 않는다, 배가 아파서.    

 

글쓰기에 대하여4.

평범한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곤 했는데, 늘 장려상이었다. 대상이나 금상은 한 명이었고, 은상은 두 명, 그리고 장려상은 더 여러 명이 받았다. 그러니 나의 글쓰기 실력은 딱 그 정도였는데, 엄마는 나의 장려상을 마치 금상인 양 화려하게 칭찬해 주곤 했다. 그게 어쩌면 나의 자의식을 더 건드렸던 것 같다. 나도 알고, 엄마도 알면서, 과장된 칭찬으로 나를 북돋아 주려는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나는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리고 그 꿈이 내 발목을 붙잡고 글을 못 쓰게 막아왔다. 글을 쓰려면, 잘 써야 하기에 지금까지 못 썼다. 이제는 꿈을 바꿀 때다. 그저그런 글로도 책이란 걸 내는 걸로. 정말, 그러고 싶다.     


(BTW 장려상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름 좀 바꾸었으면 한다. 장려상이 뭔가! 상을 타기엔 좀 아쉽지만 앞으로 좀 더 애 써 보기를 장려하며 주는 상이라니! 대상, 금상은 재능을 지닌 자가 가져가는 상이라면, 장려상은 상을 타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찜찜함을 주었는데, 심지어 단상으로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 올라가 받아 오려면 뭔가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한 번 만 더 고민한다면, 고만고만한 수준의 글이어도, 각각의 글에 맞는 상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글쓰기에 대해서만은, 굳이 1, 2, 3 등을 매기기보다 조금 더 섬세한 방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개성 있는 생각이 돋보였다면 <창의력 뿜뿜상>, 읽는 내내 은근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글이었다면 <따끈따끈상>, 읽는 이를 뭉클하게 한 글에는 <무한 감동상>. 글을 쓰느라 나름 자신의 깜냥 안에서 최선을 다한 어린이들에게 약간의 성의를 기울여 준다면, 그들의 문학적 감성이 나이가 들 수로 조금씩 증발하는 걸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진짜로 앞으로의 글쓰기가 조금은 장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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