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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Sep 02. 2021

체력이 심력

 

상담을 공부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고, 이걸 더 축소해 본다면 나를 배우는 것이다. 나란 사람을 찬찬히 살피고, 나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나를 어떻게 다룰지, 취약점은 어떻게 채우고, 강점은 어떻게 더 키울지 알아가는 것이 상담 공부다. 그래서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내 상담은 분명 잘 될 것이다. 상담은 사람이 도구이니까.     


나는 체력이 약하다. 아, 이건 이미 진작에 알았던 것이지만,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사실을 하나 더 얹게 되었는데, 나란 사람은 (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하다 싶지만) 체력이 심력인 사람이다. 나는 곧잘 짜증이 치밀곤 하는데(짜증이 나는 것과 내는 것을 구분한다. 짜증이 난다고, 그때마다 내지는 않는다. 그걸 발산할지 여부는 상대가 나에게 만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진다. 주로 나나와 남편, 엄마에게 가장 필터 없이 터져 나가고, 요즘엔 아이들을 향해서도 자꾸 필터가 느슨해져서 속상하다. 그리고 나와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나의 짜증을 볼 일이 가장 적어진다. 이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 반대, 그러니까 짜증을 낼 거라면 가장 먼 사람에게 내고, 내 소중한 가까운 이에겐 안 내고 싶단 말이다. 혹은 그럴 수 있다면, 아예 짜증이란 걸 없애고 싶다.) 그건 내 몸이 현재를, 이 순간을 버거워 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때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하는 것보다, 몸으로 초점을 옮기는 게 더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엔 나는 왜 이리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날까를 고민했다. 아빠의 성향을 많이 타고난 것도 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평균(?이 존재한다면)보다 예민한 것도 맞지만, 왜를 알아내는 일이 바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근엔 그런 분석을 접어 두고 보다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1.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짜증을 감지한다. 

2. ‘앗, 몸이 피곤한가 보군!’ 생각한다. 

3. 얼른 앉을 자리를 찾아 (이왕이면 현재 위치에서 장소를 옮기는 게 좋다.) 잠시라도 눈을 감고 쉰다. 

4. 이게 불가능한 상황일 경우 (예를 들면 징징대며 버둥대고 있는 13킬로그램을 안고 걷고 있는 중인 경우) 임시방편이라고 해도 도움이 될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은 따끈한 카페라떼인 경우 가장 좋고, 늦은 오후여서 그게 꺼려진다면 홍삼차, 준비성이 좋았던 날이어서 미리 챙겨두었다면 아빠표 녹용팩이 있다. 이 세 가지는 미약하더라도, 잠깐이더라도, 나의 체력을 바짝 충전해 줄 수 있는 비상약이다. 

5. 이마저 여의치 않는 상황이라면, 심호흡을 크게 열 번 한다. 

이러고도 결국엔 짜증을 낼 때가 있다. 망한 날이다. 그래도 늘 망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발전이라고, 나아지고 있다고 나를 토닥인다.     


출산 후 산후조리에 대해 많은 말들을 들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손 후배는 손목 보호대를 선물하며 몸 안의 모든 관절을 각별히 챙겨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녀보다 많은 나이에 한꺼번에 둘을 출산하려니 잔뜩 겁을 먹고, 허리에 차는 것부터 무릎 보호대까지 진작 사두었는데 아이를 낳고 (정확히 말하자면, 배를 갈라 꺼내고) 일주일 정도 지나 허리를 펼 수 있게 된 때부터 백일이 지나도록, 관절통을 감지하기 위해 바짝 준비하고 있었건만 특별히 아프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임신 중 입덧도 거의 없이 지냈기에 ‘역시, 난 임신 성공까지만 힘들지,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인 체질인가봐! 한 명 더?’라며 호기로운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몸이 이상해지기는 했다. 아기를 안고 젖병을 물려주고 있는 시간이 뼈가 녹아내리도록 힘들었다. 같은 자세를 단 15분 유지하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백일에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아파트를 내려와 산책을 나갔건만, 단지를 벗어나 걸을 수가 없었다. 숨이 차고 힘이 쑥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 넘어져 아이가 다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날 밤 아이들이 잠 든 뒤 홈핏 앱을 다운받았다. 체력 점검을 위해 팔 벌려 뛰기를 30초 안에 몇 번 하는지 체크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다섯 번 하고 나서 기절할 뻔 했다. 그때 알았다. 아, 이런 거구나. 나의 산후 체력은 그 정도였다. 관절 아플 것만 생각하고 딱 대기하고 있었는데, 나의 산후 증상은 전신의 할머니 체력으로 나타났던 거였다. 조금씩 회복이 되어 지금은 임신 전의 체력, 나의 본래 체력을 회복했지만 이마저도 영 부실한지라 진짜 운동을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돌 넘긴 때에 여전히 그득한 배를 보고 깜짝 놀라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바짝 석 달을 열심히 다녔건만, 경영난을 이유로 헬스클럽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미리 내놓은 PT비를 날렸고, 의욕이 확 꺾였다. 그리고 난 뒤 슬금슬금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쌍둥이가 담겼다 나온 늘어진 뱃가죽이 살로 채워졌다. 모르겠다. 흐물흐물한 뱃가죽이 나았던 것인지, 팽팽하고 두둑한 뱃살이 나은 것인지. 아, 됐고!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다. 체력이 곧 심력이므로.  


   

덧붙여, <알고 있지만 몰랐던> 에 대한 이야기.

심리 전공서에서는 잘 표현이 되어 있던 내용인데, 책을 뒤져봐도 어디였는지, 찾지 못하는 중. 그러니까, 우리가 안다고 의식하고 아는 것을 명시적 앎이라고 한다면, 알고는 있으되, 안다고 의식하지 않는 앎, 즉 암묵적 앎이 있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면 그건 분명히 알고 있음이지만, 때로는, 내가 짜장면을 좋아하고 있음을 생각지 못하다가 다른 이가 시켜 놓은 짬뽕을 먹으며 엉겁결에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었던 거구나.’하고. 그것이 <알고 있지만 몰랐던> 것을 온전한 인식의 영역, 명시적 앎으로 가져오는 순간이다. (이 설명을 믿지 마시고, 잘 쓰여진 다른 책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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