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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Mar 17. 2020

음악치료사의 조언

뉴욕에서 일하는 음악치료사 이야기

음악치료사의 조언


저는 이 세상을 소리 내며 살아가는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기에 적힌 팁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 묻어있고, 편파적일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1. 나답게.

가장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나다운 것이다. 음악치료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다. 내가 떨거나 불편하다면 상대방도 그걸 느낄 것이다. 무언가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그리고 내담자들은 의외로 관대하다. 음악치료사가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줄 자세가 되었다면, 색안경을 벗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반은 한 것이다. 나머지는 내담자의 반응을 잘 살피고 얼마나 유연하게 세션을 이끌어가고 직감을 활용하는가,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고, 초조해하지 않으며 관계 형성에 힘쓰면 된다. 음악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2.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전문가가 되어라.

음악치료사 과정에, "person-centered" 또는 "client-centered"로 세션을 위한 곡을 준비할 때, "client preferred music"내담자가 선호하는, 음악 위주로 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내 경험으로는 각 기관의 특징에 따라 내담자의 음악적 취향, 연령대에 맞추거나, 그들이 알만한 그들의 시대에 유명한 곡을 선정해서 준비해 가기 마련이다. 음악치료사들은 여러 장르의 곡을 소화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허나,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당연한 학설? 이론? 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음악치료사로 트레이닝받고 그 후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하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음악을 연습할 때, 나는 왜 그 특정 곡을 선택하고 배우는가. 가장 귀에 익은 곡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중 내가 배우고 싶은, 내 마음에 든 곡을 선택해서 연습한다. 가만 보면, 내가 아는 곡 위주로 세션이 진행된다. 내가 아는 만큼 음악적 배경과 스킬을 바탕으로 내담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즉흥연주 (improvisation)에서도 적용된다.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전문가가 되라는 말은, 그 곡의 박자, 멜로디, 코드 진행, 가사 및 반주하며 노래 부르는 것 까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 음악을 사용할지 모르고, 또 그 음악을 할 때 그 음악치료사의 기쁨이 내담자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준비해왔다고 떠벌리는 음악치료사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예외이다. 나는 박진영을 좋아하는데, 그의 노래를 꽤 자주 인용하는 편이다. 물론, 미국인들과 세션 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주로 코드 진행이지만, 그 곡의 느낌을 온전히 살려서, 또 박진영이란 한국인 뮤지션에 대해서도 얘기를 한다. 음악치료 세션에서 어떤 음악을 사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담자의 음악/소리 연관성을 알아가고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음악을 사용하느냐다. 그리고 내담자와의 케미. 즉 모든 세션의 음악은 내 주도권도 크다. 내 음악적 성향 및 취향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항상 더 많은 음악을 듣고 배우려 하지만, 내가 듣고 좋은 음악을 배우려는 경향이 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걸 많이 활용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 다운 것을 할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내담자 위주의 치료라 하지만, 지극히 내 위주다.


단, 내가 좋은 음악을 사용할 때 상대방의 반응이 시원찮다고 느낀다면 기분이 불편할 수가 있다. 그런 건 속으로 잘 인지하고, 내담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내담자의 반응에 너무 의미 부여하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가장 나답게 나를 최대한 활용해서 세션을 해봐라. 뭐든 trial & error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다.


3. 자신을 위해서 연주하라.

음악 전공생들은 오디션부터, 실기 시험 준비로 곡을 연습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 때론 좋아하는 곡이나 배우고 싶은 곡을 재미로 연주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즉흥적으로 기분에 따라 연주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무언가 목표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작곡이 아닌, 그냥 그 순간만을 위해 연주해보라. 예를 들어, 실기 곡을 연습을 할 때, 내 기분에 따라, 나에게 초점을 맞춰 연주해 보고,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첫걸음이다.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기존에 있는 악보대로 보고 연주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즉흥연주는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즉흥연주는 연주자의 음악적 배경, 내공, 테크닉을 전제로 깔려있다. 즉흥연주를 하다 보면 늘고 더 재밌을 것이다. 녹음을 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음악일기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건 self-care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4. 기타랑 친해지기.

기타를 잘 배우고 알아가라. 피아노/키보드와 더불어 기타는 필수 악기이다. 음악치료사에게 기타 만한 악기는 없다. 정말 효자 템이다. 피아노가 주 악기인 나로서는 어떤 점에선 피아노를 따라 올 악기가 없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기타만의 매력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우선, 어디든지 함께 할 수 있다. 피아노는 옮겨 다닐 수 없다. 키보드 같은 경우도 옮겨지긴 하지만, 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번거롭다. 그리고 다른 층에서 세션을 하러 가야 한다면, 카트를 이용해서 가야 하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빨리빨리 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튼 번거로운 건 딱 질색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거나 엘리베이터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선택을 한다.

기타는 더 유연하다.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고 이동할 때나 여러모로 편리하다. 기타에 손이 익숙해지고 능숙해질수록, 그 매력에 무궁무진하게 빠져들 것이다.


처음부터 기타를 좋아한 건 아니다. 오히려 싫어했다는 게 적합하다. 대학 때 기타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간단한 코드 외엔 요령도 없거니와 혼자 잘못된 습관이 베이면서 1년에 한두 번 심한 손목 통증을 겪었다. 손도 작은 편이어서 처음 배울 땐 쥐가 나거나 고통스러워서 연습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점심시간 직후 수업이라, 자장가에 적합한 기타 지도자분의 목소리와 지루한 수업은 나를 매번 낮잠에 빠져들게 했다. 앉은 자세로 기타를 안고 침 흘리던 기억밖에 없다. 그랬던 내가, 기타와 친해지게 된 계기가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꼭 배우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Tamia의 "Officially Missing You." 한국에서도 리메이크가 되었던 곡이라, 꽤 유명하다. 이 곡을 유튜브에 찾아보면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기타로 배우고 연습하면서 기타가 늘기 시작했다. 이렇게 터득한 곡 혹은 곡의  코드 진행 만이라도 세션에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나는 야행성이라 밤에 그렇게 연습이 잘 된다. 보통 침대에 앉아서 연습하지만, 도중에 드러눕기 일쑤다. 그래서 누워서 기타를 치고 잠이 들면 내 옆에 기타가 누워있다. 다행히 퀸사이즈 침대라 낙하나 다른 가슴 아픈 일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5. 작사 작곡.

음악을 만들어라. 거창한 3-4분짜리 노래를 만들라는 것이 아닌 그냥 간단한 네 마디 정도라도 좋다. 동요나 자장가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국 교육 과정에선, "Hello Song"이나 "Goodbye Song"을 만들도록 한다. 나도 만들긴 했었지만, 솔직히 오그라들고 잘 쓰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거나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하는 연습과 연구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 세션을 하면서 음악치료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작사 작곡을 한다. 예를 들면, 즉흥연주를 하면서 내담자의 반응과 관심을 유발 및 유대감을 쌓기 위해 그 상황에 어울리는 가사를 입히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그 들의 행동을 가사에 반영하기도 한다. 자작곡을 만든다는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간단한 우리나라의 민요, 타령, 동요, 노동요, 대중가요 등 누구든 다 아는 잘 알려진 노래에 개사를 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예를 들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꼭꼭 숨었네, 내 핸드폰 어딨냐"로 바꿔 부른다던가 그 외, 초등학생 때 많이 불렀던, "누구누구는 바보래요~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간단한 한두 소절에 나의 일상을 담아보자. 또 다른 좋은 예는, 영화 기생충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한 "제시카 송"이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기타나 피아노로 코드 진행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멜로디나 가사가 떠오르고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서둘러 스마트폰이던 아무 기기를 이용해서 녹음을 한다. 뭐든지 그냥 저절로 되는 건 없다. 연습이 필요하고 하다 보면 느는 것이다.


6. 연애를 해라.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가고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값진 시간이다. 연애관계가 현재 진행형이든 과거이든 그 당시 느꼈던 감정과 경험들이 잠재된 나의 창의성을 깨워 예술 창조에 일조. 어떤 곡이 나올지도 모르는 법. 짝사랑도 좋지만, 연애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마법 같은 관계이다. 시작 전부터 끝난 후 까지, 행복한데 불안하고 두렵고 온갖 감정 소모에 시달려도, 해 볼 만한 것이다. 이 또한 공감 능력을 향상해주고 도움이 될 것이다.


7. 사서 고생하라.

젊어서는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삶의 굴곡이 많았던 나는 어쩌면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었다.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이 수많은 환자/내담자들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아픈 사람들 눈에 아픈 사람들이 잘 보이는 것처럼, 치료사라면 사서 고생하는 걸 감히 강력 추천한다. 나는 한국의 음악치료학 시스템은 잘 모르지만, 미국 유학이나 교환학생 경험도 좋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 그만큼 힘들고 삶의 교훈 등 얻는 게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와 같은 문화와 모국어를 쓰며 자란 사람들과 있다, 미국에 와서 다른 환경에 언어 장벽 및 온갖 경험들은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겠지만, 그 다양한 경험들이 시야를 넓혀주고 깊이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음악을 접하며 수많은 감정과 배움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시간 및 minority (소수집단)의 삶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공감 능력 또한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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