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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시작된 유부녀의 사회생활

인생의 전환점은 임신과 출산

by graceforme

유부녀의 사회생활

그저 가녀린 여자였던 나는 결혼을 넘어 아이 엄마가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25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하자마자 시작되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장의 눈치를 보며 모든 직원이 저녁 9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었다. 일이 처음이라 재미도 있었지만 저녁도 먹지 않고 밤까지 일하는 건 쉽지 않았다. 토요일도 일을 했다. 그땐 주 5일제라는 게 정착이 안되었던 시절이다.


1년여를 다니고는 도망치듯 나와서 곧바로 다른 회사로 취직을 했다. 사람들도 좋고 일도 할만했다. 하지만 1년 후 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우리 부서는 정리가 된다고 했다. 난 정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남은 몇몇 사람들과 지내야 했다. 우리 회사를 매수한 큰 회사의 빈 건물에 단 몇 명이 앉아서 사업의 마무리를 지었다. 대신 3개월치 월급을 받고 나갈 수 있었다. 나가기 전 다른 직원분의 소개로 또 다른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쉼 없이 바로바로 회사를 옮겼다. 이번에는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난 중고 신입이었다. 그래도 일처리를 잘해서 대표가 좋아했었다. 내 생일인걸 알게 된 대표는 갑자기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재밌었던 시기였다. 일도 배우고 점점 성장하며 저녁에는 신나게 술자리를 즐기며 노는 20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비밀이었지만 결국 다 소문이 났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사내 연애를 하는 걸 알게 되고 곧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존재는 많이 달라졌다.


평소에도 여직원들이 하나씩 결혼할 때마다 결혼하지 말고 일하기를 바라던 대표였다.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고 그러면 또 출산휴가나 육아 휴직을 가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도 끊임없이 사내 커플이 나오고 결혼을 하였다. 그중에 나도 포함이 되었다.


단지 결혼을 하고 인생이 너무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시댁을 만나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진정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은 임신과 함께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왜 아이가 안 생길까 걱정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찾아왔다.


하지만 임신은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아이를 가진 걸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 보리차든 생수든 물을 먹지 못했다. 맛이 이상했다. 그리고 냉장고 근처에만 가도 반찬 냄새가 너무 힘들었다. 한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회사를 쉬게 되면 나중에 출산하자마자 회사를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난 힘들어도 회사를 다녀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치약도 토할 것 같았다. 울렁거리면서 우엑 하고 토하게 했다. 다행히 어린이 치약은 괜찮아서 임신한 동안 어린이 치약을 썼다. 그렇게 겨우 아침에 나와서 바깥공기를 마시면 그 순간 또 울렁거렸다.

공기만 바뀌어도 반응이 왔다. 겨우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서울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40분을 갔다.


버스 타기 전부터 자꾸 입에 침이 고였다. 어쩔 수 없이 뱉어내야 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입안 가득 고인 침을 물고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침을 한가득 뱉어냈다. 엄청 불량해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녀석이길래 이렇게 입덧이 심한 건지 궁금해졌다.


난 이제 점심시간에 한식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함께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어린 친구가 평소에 잘 안 먹었는데 알고 보니 한식 말고 면을 좋아해 나랑 잘 맞았다. 희한하게 임신을 한 후로는 한식은 못 먹는데 면은 먹을 수 있었다. 우동, 쌀국수, 떡볶이, 콘프레이크 등 이런 것만 땡겼다. 그 친구와 다행히 점심을 먹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점심시간에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울렁거렸다.


퇴근을 하는 길 버스를 다시 타고 집 앞에서 내리면 공기가 바뀌는 순간 다 토했다. 회사에서도 툭하면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너무 심하게 토했는지 얼굴전체에 붉은 반점이 생겨 급히 근처 산부인과에 들렸다.


입덧은 임신 5개월 차부터 점점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한식은 먹고 싶지 않았고 물 대신 탄산수를 한팩을 사서 먹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회사를 나갔다.


다행히 신랑이 본사 근처 건물에서 일하게 되어 함께 자차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배가 불러오고 있는 임신 중반쯤 다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그때는 그래도 사장님께 부탁을 하면 들어 줄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자신감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일단 부탁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난 대표이사실에 들어갔다. 난 간절한 마음으로 신랑을 지금처럼 여기서 근무할 수 있도록 연장해 달라고 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출퇴근이 힘들다고 얘기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알겠다며 부탁을 들어주셨다. 신랑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랑이 나한테 얘기했다.

" 사장님이 그럴 리가 없는데 나보고 여기서 더 일하라고 하시네. 너도 임신해서 다니기 힘든 거 같다며 당분간 여기서 일하래."

신랑은 평소 같지 않다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부탁한 건 모르고....


그렇게 배가 불러오는 동안 신랑과 출퇴근을 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래도 첫째 임신까지는 회사의 배려도 있었고 생각보다 다닐만했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똑바로 누워 잘 수도 없는 불편함과 퉁퉁 붓는 발목, 그리고 갑자기 눈이 안보이는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어린이 치약을 썼는데 결국 이가 너무 아파 치과도 방문했었다. 임신은 결코 쉬운 경험이 아니다.


힘들어도 난 출산뒤로 최대한 쉬기 위해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에 출산휴가를 내고 그때까지 출근을 했다.



예정일은 다가오는데 아이는 반응이 없었고 난 열심히 움직이며 아이가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은 지났고 예정일 일주일 뒤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전날 뭔가 양수가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방문했을 때 양수가 나온 거 같다고 얘기했는데 의사는 의아해하며 한번 검사해 보자고 했고 검사 결과는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입원해야 된다고 했다. 신랑과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었다. 긴장감과 함께 새 생명을 만난다는 설렘에 1인실에 입원하여 신랑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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