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라니...
입원을 하고 태동검사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바로 옆이 수술실이었다. 어쩜 이리 자주 아이가 태어나는 건지.... 1시간마다 비명과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밤새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거의 잠을 못 자고 하루를 보냈다. 피를 무서워하는 신랑은 밤새 수술실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자기는 못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오전까지는 그냥 생리통처럼 살살 아팠다. 일주일 전 예정일쯤 아픈 신랑을 두고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다녀오는 길... 그녀가 나한테 퍼부으며 아픈 아들 두고 나갔다고 했을 때 이후로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는다고 얘기해야 했다. 입원이 갑자기 결정되면서 그녀한테 신랑이 통화했었고 오늘 오전에는 나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아이를 통해 화해를 하게 된 것이다.
입원해서도 고생은 다시 시작이었다. 분명 오전에 왔던 간호사는 태동기를 배 옆으로 붙였고 손등에 맞고 있는 주사를 살피며 나갔는데 몇 시간 후 손가락이 퉁퉁 부어 간호사를 불렀더니 오전과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누가 주사를 손에 이렇게 해놨냐며 다른 말을 했다. 정말 3시간마다 간호사가 바뀌면서 자꾸 다른 의견을 얘기해서 고생을 하게 되었다.
2시쯤 자궁경부가 4cm 정도 열렸다는 말과 함께 무통 주사를 놔준다고 했다. 무통 주사 전까지도 생리통이 심한 듯 좀 아팠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는 무통주사가 천국이라는데 난 30분 만에 진진통을 불렀다.
오전과는 전혀 다른 고통이 몰려왔다. 정말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골반이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누가 나의 뼈들을 힘으로 벌리는 느낌이었다.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다. 오후에는 또 다른 간호사분이 계속 내진을 하며 왔다 갔다 하셨다. 그렇게 4시가 넘어가고 5시가 다되어 가니 고통은 점점 심해져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난 침대 난간을 부여 잡으며 악!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6시쯤 내진을 하니 자궁경부가 10cm 다 열려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는 전혀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내내 나를 돌보던 간호사는 아마도 의사가 수술하자고 할 거 같다며 말하고는 가셨다.
6시 이후 이번에도 또 새로운 간호사분이 들어와서는 내진을 했다. 10cm 다 열려 있으니 좀 있음 아이가 나올 거 같다고 했다. 간호사끼리 소통을 안 하는 건지.... 이때까지 진통 다하고 다 열리고도 아이가 안 내려왔는데 이제 들어온 간호사는 다 열렸으니 다시 아이가 나올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열 달 내내 진료 보던 의사선생님은 날 어제 입원을 시키고는 오늘은 자기가 없다며 다른 당직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정말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는 내진을 했다.
" 골반이 비뚫어져서 아이가 못 내려와요. 수술하셔야 해요."
" 네? 골반 멀쩡하다고 했었는데...."
분명 열 달 내내 봐주던 의사 선생님은 지난번 골반 검사에서 '"골반은 괜찮아요~" 라고 했는데 이 무슨 어이없는 말인지....
정말 맘카페에서 가장 안 좋은 케이스라고 들었던 경우가 되었다. 진통 다 하고 수술하는 것!
평소에도 나보고 수술하면 안 된다며 수술하면 흉터보고 남자가 나중에 싫어한다면서 조언한 그녀가 떠올랐고 어쩔 수 없이 수술한다고 신랑이 전화를 한 게 화근이 되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택시 타고 쫓아오게 되었다. 양가 다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수술한다는 소리에 바로 달려온 것이다.
그때가 7시쯤 된 것 같다. 의사한테는 좀 더 해보겠다고 하고 진통을 버틴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혼자서 진통을 느끼며 피로 범벅된 지도 모르고 침대를 부여잡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 아니 난 43킬로에 4.5킬로도 혼자 낳았는데 아직 시간도 얼마 됐잖아. 아들 다리 잡아봐 "
그렇게 그녀는 나가는 문 앞 의자에 앉아서 아직 아니라고 했다.
8시쯤 두 시간을 기다린 의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다시 내진을 했지만 아이의 머리는 내려오지 않았고 배도 처지지 않았다.
" 수술하셔야 돼요. 계속 기다리면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 아니 제가 43킬로에 4.5킬로도 낳았는데 아직 나올 때가 안된 거 아니에요? "
자기가 의사보다 잘 아는 듯 얘기했다.
" 수술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
이제야 화를 내며 신랑이 수술 동의서를 쓰러 나갔다. 그녀는 문 앞에 팔짱을 끼고 앉아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난 계속 진통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신랑이 수술 동의서를 쓰고 있는 동안 난 나 혼자서 일어났고 정말 피로 물든 침대를 그때 처음 보게 되었다. 그렇게 부축도 안 해주는 시모의 못마땅한 얼굴을 지나쳐서 혼자서 한발 한발 걸어서 나갔다. 정말 세상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수술실로 들어간 나는 다시 진통이 와서 빨리 부탁한다며 가운을 훌러덩 벗고 누웠다. 챙피하고 그런거는 진통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로 마취가 시작되었고 난 기억이 없었다. 보통 분만 때 하반신만 마취하는 걸로 아는데 난 기억이 없었다. 기절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정신을 차렸고 안경을 끼지 않아 흐릿한 상태에서 아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는 바로 내 젖을 물리게 해 주었는데 아이가 힘차게 쪽쪽 빨았다. 쪽쪽 소리가 귀에 너무 크게 들렸다.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힘들게 낳다 보니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다시 난 잠들어 버렸고 한참 후 깨어보니 병실이었다.
아이는 신생아실에 있었고 한두 시간 후 간호사분이 데리고 왔다. 열 달 하고도 일주일을 넘게 양수에 있어서 그런지 아이 얼굴이 부어 있었고 입술이 엄청 컸다. 정말 아이는 작으면서도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몰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난 다음에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모가 문 앞에 앉아서 팔짱 끼고 먼 산 보듯 하던 모습이 트라우마 같았다.
그렇게 병원에서 4박 5일을 보냈고 몇 시간에 한 번씩 오는 아이를 분유도 먹여보며 이게 내 아이인가 생소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마지막 퇴원날 어김없이 시모인 그녀가 왔고 1층 소아과에서 처음으로 주사를 맞히고 조리원으로 향했다. 자기가 엄마인양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시모와 떨어질 수 있는 조리원으로~
조리원에 도착하면서는 가족은 들어올 수 없었고 신랑만 가능했다. 처음 산후조리사분이 아이를 살펴봤다.
" 혹시 난산이었나요? 아이 이마에 멍들어 있어요."
멍까지 난지는 몰랐다. 만약 계속 시모 덕분에 버텼다면..... 끔찍하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의사 탓을 했다. 더 있어야 하는데 의사들은 바로 수술시킨다며.
그렇게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나 혼자 봐야 하는 시간이 오면 아이가 언제 울지 몰라 너무 무서웠다. 나 말고도 모든 산모가 그런 듯했다.
신랑은 첫애가 딸이길 간절히 바랬는데 딸이 나오니 엄청 좋아했다. 그사이 나의 출산 휴가도 2주는 더 지나버렸다. 3개월의 출산 휴가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의 존재가 생소했다. 앞으로 나와 평생 함께할 존재가 새로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정말 임신과 출산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되는 생소한 경험이면서 나의 새로운 인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