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멀지 말자!
이제 과거로 돌아가서 그녀와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써보려 한다.
결혼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10여 년 동안 내가 들었던 말과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서 박제해 버릴 것이다.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고 날짜는 여자 쪽에서 알아보는 거라 해서 생각했다. 우리 집은 불교도 아니고 교회는 다녔지만 현재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기에 최소한 손없는 날로 정해 보려 했다.
그래서 12월에 손없는 날로 정했다.
그런데 그녀가 마음에 안 들어한다. 날짜를 점쟁이한테 가서 받아야 하는데 안 했다는 것이다. 그 문제로 또 조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이후로 아무것도 결혼 준비를 하지도 않고 그냥 주말에 데이트로 만나기만 했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으로...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아들과 철학관을 가서 날짜를 두 개를 잡아 온 것이다. 5월, 10월.....
그녀는 날 생각한다고 10월은 너무 늦으니 5월이 낫겠다고 했다. 그렇게 둘이서 말도 없이 날짜를 받아왔다.
그리고 날이 정해지며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것도 훗날 말이 나왔다. 여자 쪽에서 날짜를 잡아와야 하는데 안 해서 자기가 잡았다고....
우리가 정한 날짜를 얘기해도 받아온 날짜가 아니라며 직접 받아놓고는 이렇게 또 딴소리다.
우리는 주말에만 만나는 사이였기에 주말이 너무 짧게 느껴지고 아쉬웠다. 그날도 시댁에 더 가까운 성남 시내에서 저녁에 술을 먹었다. 난 용인이라 그 시절에는 전철도 집까지 없었고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곳이라 한 시간 이상 잡아야 했다. 신랑은 성남에 살았고 여기서 택시 타면 5분 거리였다.
우리는 말이 잘 통했다. 얘기하다 보면 끝이 없었고 그날도 기분 좋게 술집에서 술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11시쯤부터 그녀가 아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좀 있다 들어갈게요'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대화했다. 술도 어느 정도 먹어 취했다.
12시쯤 또 전화가 온다. 무섭다는 내용 같았다. 꿈자리가 안 좋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한 것도 같다.
좀 있다 가겠다며 끊었고 1시쯤 또 전화가 왔다. 그래서 1시가 좀 넘어 헤어졌다.
난 나보다 많이 취한 신랑을 먼저 택시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나도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엄마가 깨어 있었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씻으려고 할 때쯤 전화가 왔다.
그녀다.
" 내가 여러 번 빨리 보내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보내? 술도 많이 먹어서 취했던데!"
" 죄송합니다. "
그때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크게 다 들려서 엄마도 듣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다.
다 큰 어른끼리 술 먹고 여자인 나는 혼자 택시 타고 더 멀리 왔는데, 술 취한 아들을 택시 태워 늦게 보냈다고 난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가 나한테 화를 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물론 제주도 갔을 때부터 좀 말도 많고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오늘 일은 더욱 이해가 안 갔다.
그러고 나서 난 회사 동료들에게 얘기해 보았다.
" 아직 결혼 전이니까 잘 생각해 봐. 결혼하면 더 할 것 같아. "
다들 말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훗날을 모르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녀한테 다시 언제 전화하면 화가 풀릴까만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전화를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난 화가 풀렸구나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