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그녀와 보내야 하던 날들
연말이 다가온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홀가분함이다.
결혼 전에는 11월부터 설레며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부터는 즐겁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우리끼리 보냈지만 연말 31 일일부터 1월 1일 이렇게 1박 2일을 항상 시댁에서 보내야 했다.
31일이면 회사는 종업식이 이루어지고 보통 점심 먹고 일찍 퇴근을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그녀가 알면 퇴근하자마자 시댁으로 직행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근무라고 항상 얘기했다. 그래야 시간을 벌 수 있다.
우리 둘이 함께 가야 하니 퇴근 시간쯤 그녀에게 전화해 출발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와서 겨우 하루 있는 신년 휴일을 보내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31일 저녁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해가 넘어가는 걸 카운트하며 야밤에 야식을 또 시켜 먹으며 형네까지 모두 모여 좁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잠자리도 넓지 않은 시댁에서 거실 겸 부엌에서 잠을 청하며 그렇게 신년을 맞이해야 했다. 아이들은 시댁만 갔다 오면 콧물이 나오고 기침하는데도 우리는 자리가 없어 현관문이 코앞에 있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네 식구가 잠을 잤다.
그렇게 신년을 매년 보냈다. 피곤하다.
결혼 후 친정엄마와 연말연시를 보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차지니까. 친정엄마는 혼자 보냈다. 친정에는 신년이 된 1월 1일 날 오빠네가 와서 떡국을 먹었다.
몇년 후에는 크리스마스는 친정엄마와 보내고 신정은 시댁과 보내기로 했다. 우리 식구 끼리의 연말은 없다.
1월 1일이 되면 시댁은 그전에 빚어놨던 만두를 넣고 만둣국을 끓였다. 몇 년 후부터는 며느리들이 끓여야 했다. 만두가 불었다며 또 타박을 듣는다. 10년이 지나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재작년에도 불었다며 뭐라고 타박이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집은 떡국인데 시댁은 만둣국이다. 만두도 그녀가 빚은 게 제일 맛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또 시간을 보내고 그녀의 끝없는 수다를 듣다가 점심도 먹어야 한다.
집에는 언제 갈 수 있을지는 그녀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가란 소리 안 했는데 먼저 일어나면..... 그녀의 기분을 건드리게 된다.
항상 그녀는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자기를 건드린다고 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는 그 좁은 집에서 아이들을 재울 수 없어 내가 그냥 우리 집으로 불러서 31일부터 1월 1일까지 보냈다. 난 신정 며칠 전에 장을 보고 31일 날 오후에 일찍 퇴근하면서 쉬는 게 아니라 반찬을 준비했다. 그녀는 아직 회사에 있는 줄 알지만..... 그리고 저녁쯤 신랑이 그녀를 데리러 갔다. 마치 회사에서 지금 끝나서 퇴근길에 데리러 가는 것처럼...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 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상식은 상식이 아니니까....
31일 난 저녁을 차렸다. 그녀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밥을 새로 해야 한다. 신혼 때 일부러 밥을 아침 점심 두 끼 먹으려고 전기밥솥에 많이 했다가 점심에 퍼서 드렸더니 밥을 새로 안 했다고 한소리 들은 적이 있다. 매끼를 새로 하라고 했다. 하지만 항상 기분 따라 매번 바뀌었다. 어느 날은 밥이 많으니 내일 아침에 밥을 안 해도 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저녁을 차리고 다 함께 밥을 먹고 12시가 지날 때까지 TV를 보며 기다렸다. 그녀는 TV도 잘 안 본다. 오자마자 여기저기 아프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이웃 이야기 그녀 주변 이야기를 전화로도 들었는데 얼굴 보고 또 얘기한다. 마치 처음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시집살이 얘기는 귀가 따갑도록 매번 처음 얘기 하듯이 들었다. 같이 TV를 보고 있어도 집중을 할 수 없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12시가 지나면 좋겠다. 나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 해가 그해일 뿐이다.
이제 그녀가 없는 첫 새해가 다가온다. 내 마음이 들떠서 크리스마스 트리도 하고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31일에 난 밥을 안차려도 되겠지?
하지만 오늘이 31일이 되었다....
신랑을 부르는 그녀... 31일부터 1월1일까지 혼자 시댁으로 갔다.
이제 매년 새해는 아이들하고만 함께 할수 있겠지.
내가 안가는것 만으로 안도해야 하는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댁을 가는 신랑을 미워해야 하는건지
마음이 복잡하다. 남자 하나 놓고 시어머니와 쟁탈전을 하는것 같은 드러운 기분.
그래 너 가져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