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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는 멀어졌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또 시작이다.

혼자가 되어 가는 그녀

by graceforme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난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수술 후 추석에 처음으로 집에서 친정엄마와 보내며 시댁을 안 가게 되었다. 나 없이 또 온 식구가 모여 명절을 잘 보냈는데 마지막 집에 가기 전 또 일이 터졌다.

나의 멱살을 잡으며 한바탕 치른 그 해 이후에 그녀가 나에게는 쉽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그녀에게 난 착한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도 또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를 화나게 하는 또 한 명이 있다. 아버님....



이혼 후 시골에서 남동생분과 함께 살고 계신 아버님은 우리가 결혼한 후부터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에 시댁으로 오셨다. 그러면 자식들도 시댁에 가야 했다. 그녀가 둘이 있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가끔 사이가 안 좋아지면 자주 안 오시거나 자식들이 시골로 방문했다. 그때도 항상 그녀가 함께 했다. 알 수 없는 사이이다.


그렇게 명절이나 생신 때면 아버님이 오시던지 우리가 가던지 하며 온 식구가 함께 모였다.


아버님은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아이를 안고 산을 오를 정도로 건강하셨다. 하지만 연세가 70이 넘어가시니 체력도 많이 떨어지시고 걷는 것도 예전 같지 않으셨다. 우리보다 아버님을 자주 뵙는 아주버님이 어느 날 아버님을 보고는 걱정이 되었나 보다. 눈빛이 또렷하지 않아 보이고 먹는 것도 제대로 안 챙겨 드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점집을 들려서 점을 봤다. 점쟁이의 말이 결국 화를 불렀다.


아버님을 저렇게 두면 올 추석 전에 돌아가실 거라고.....


사람이라는 게 안 좋은 소식은 신경 쓰이기 마련이니 아주버님은 크게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주버님보고 아들 낳을 거라고 한 점쟁이인데 딸을 낳았기에 난 그 점쟁이를 믿지 않는데도 아주버님은 굳게 믿고는 그 얘기를 하필 그녀한테 전해서 걱정하게 만들었다. 항상 자기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는 그녀는 아버님을 모셔 와야 하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신랑은 반대했다. 오랫동안 싸우다가 헤어진 사이이고 각자 혼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같이 사는 게 쉽지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아주버님은 함께하길 바라고 그녀에게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까지 반대했었지만 결국 모시고 오게 되었다. 아주버님과 그녀가 시골에 직접 가서 짐을 챙기고 아버님을 데리고 온 것이다.


신랑은 싫었지만 혼자가 아닌 그녀라면 오히려 우리한테 신경을 덜 쓰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2주마다 꼬박꼬박 안 봐도 되지 않겠냐는 혼자만의 상상을 했다.


그렇게 아버님이 오시고 몇 달 동안 그녀가 밥을 꼬박꼬박 챙겨 드리고 했더니 아버님의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툭하면 아버님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들들을 불렀다. 그때마다 신랑은 그녀에게 나는 반대하지 않았냐며 얘기했고 그녀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자서 편하게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누군가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것도 점점 힘들었고 아버님이 돈을 벌지도 않고 들어와 계시니 생활비가 더 든다고 불만이었다.

그리고 또 아버님도 기존 생활 방식을 고치지 못하시고는 매번 잔소리를 듣고 계셨고 그렇게 쌓이면 또 아들들한테 전화해서 그녀가 하소연을 했다.


오히려 주말에는 꼬박꼬박 시댁을 가서 만나야 했다. 아버님으로 인해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상태이기에 그녀를 더 챙겨야 했다. 그리고 코로나 때 일이다. 코로나는 아닌데 비슷한 증세로 그녀가 너무 아파할 때 아버님이 큰 도움이 못되었다. 아플 때는 아버님도 알아서 식사를 챙겨드셔야 할 텐데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니 그녀가 더욱 화가 났다.


그렇게 매번 싸우고 아들들한테 전화해서 못살겠다 하니 결국 큰며느리인 형님이 아주버님보고 아버님을 모셔 오라고 하게 되었다.


일 년이 채 못되어 아버님은 시골이 아닌 아주버님 집으로 떠나셨다. 하지만 아버님을 보내놓고도 그녀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자주 안 보니 애틋해진 건지 서로 통화를 하시는 거다.


이렇게 되면서 이젠 그 화가 큰며느리한테로 갔다.



형님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버님을 모셔왔지만 쉽지 않았다. 좁은 집에서 아이의 방을 내드려야 했고 맞벌이임에도 식사를 챙겨 놓고 일을 가야 했다. 낮에 혼자 드실 수 있도록 국이며 반찬이며 해놓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함께 모시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두 손 다 들고 아버님을 잡지 않아 놓고는 형님이 아버님을 잘 모시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을 했다.


아버님과 통화를 하며 식사하셨냐, 뭐 드셨냐, 언제 드셨냐 이렇게 물으며 큰며느리가 아버님을 제대로 안 모실까 봐 걱정을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헬스트레이너인 아주버님이 대회심사위원으로 지방을 가는데 거기에 형님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소리에 항상 불만이었다.


" 신랑 일하는데 안 빠지고 꼭 붙어 다니고 아버님이 집에 계시면 식사도 챙겨야 하는데 말이야."


형님이 아버님을 모시면서부터 그녀의 형님에 대한 불만이 점점 더 커지는 중이었다.

반대로 형님은 아버님과 주말이라도 떨어져서 나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시아버지와 둘이서 하루 종일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녀는 그전부터도 형님에 대해 좋은 소리를 잘하지 않았다. 아주버님의 결혼 전 여자친구가 훨씬 그녀 자신한테 잘했다는 얘기를 우리한테 매번 했다. 물론 친척들 앞에서 내가 쫓아다녀서 결혼했다는 유언비어도 서슴지 않는 그녀이기에 새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큰며느리인데 둘째인 내가 집안 대소사를 다 한다며 그것도 불만이었다. 그게 나한테는 칭찬이라며 하는 말이겠지만 같은 며느리로서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큰며느리한테는 또 내 이야기를 하는 그녀니까. 평소에도 아주버님네가 자기 식구끼리 돈 없다면서 자주 놀러 다닌다며 싫어했던 그녀다. 그런데 그녀가 아버님과 통화를 자주 하니 아주버님네가 언제 어디 놀러 갔는지, 외식은 얼마나 하는지 다 알게 되었고 그녀는 점점 불만이 쌓여 갔다.


" 맨날 돈 없다면서 들어보면 매번 나가서 외식한다더라 그리고 아버님이 거의 내신단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에 아주버님이 또 대회심사위원으로 지방을 갈 때 형님이 아이와 함께 따라갔고 아버님은 점점 발이 아프시기도 하고 계속 따라다니기 힘들어 집에 계시게 되었다. 식사는 알아서 챙겨 드시도록 해놓고 갔다고 한다. 어김없이 그녀가 아버님께 전화를 했고 아버님이 혼자 계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아주버님네 식구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또 그녀가 아버님과 통화를 했다. 아침까지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났다. 그리고 아침을 드셨냐고 물었는데 아버님은 아직 안 드셨다고 얘기를 하셨다. 결국 그녀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너 어제 나와서 아직도 안 들어갔어? 너는 왜 신랑을 꼭 따라다니는 거야? 아버님이 집에 계시면 식사를 챙겨 드려야지 안 들어가? " 라며 호통을 친 것이다.


하지만 이게 한 번이 아니었다. 이 일로 또 아주버님과 그녀가 싸우면 "큰며느리 네가 굳이 다 얘기해서 아들하고 사이 멀어지게 한다"며 더 미워했다.


아들집에 사시는 아버님도 편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조금만 융통성 있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 얘기를 해버리시니 아들한테도 혼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난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수술 후 추석에 처음으로 집에서 친정엄마와 보내며 시댁을 안 가게 되었다. 나 없이 또 온 식구가 모여 명절을 잘 보냈지만 그녀의 꼬투리는 끝이 없었다. 모든 식구들을 눈치 보게 했다. 아이들까지...


그리고 명절에 형님과 그녀가 대화를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사실 아버님이 청결하지 못하다 보니 그녀가 잔소리를 하며 힘들어했었고 결국 말을 안 듣는다며 싸우고는 아주버님네로 보내진 것이지만 며느리가 아버님을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형님도 자기가 모셔보니 아버님께 잔소리를 하게 된다며 그녀에게 힘드셨겠다며 맞장구를 쳐드렸다. 그건 그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 텐데 그것조차 그녀에게는 꼬투리가 되었다.


"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가 아버님한테 뭐라고 하면 되니? "

라며 오히려 한소리를 듣게 됐다.


그리고 명절 당일이 지난 다음날 오전... 아침 식사 후 대화를 하다가 또 일이 터졌다. 이제 다들 친정에 가봐야 할 때였는데 말이다.


아주버님 건강 챙기라며 잔소리하는 그녀에게 아주버님이 한마디 하면서 또 그녀는 폭발했다. 아이들도 다 있는 시댁 부엌에서 유리컵을 싱크대에 던져서 깨뜨린 것이다. 항상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 그녀다. 아이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기분을 드러낸 것이다. 아이들과 아버님은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또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주버님네는 먼저 가버렸고 신랑과 아이들도 오전 중에 갈 예정이었지만 그녀의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 결국 오후 저녁까지 다 보내고 와야 했다. 아주버님과 싸웠지만 항상 그 짐은 우리가 맡아야 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 가족한테만 화가 안 오면 다행이다라고 안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랑과 그녀가 점심 식사때문에 낮에 아버님만 계신 아주버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집에 들어섰는데 집이 너무 지저분하고 짐이 여기저기 많은 걸 보고 놀라고 나왔단다.


그리고는 우리한테 이렇게 얘기했다.


" 집을 돼지우리같이 해놓고 살면서 아버님보고 지저분하다고 뭐라고 하고 있다. "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화는 결국 터뜨리고 만다. 이번에도 그녀는 아버님이 주말에 혼자 계시다는 얘기를 전화로 들었고 그다음 날 오전에 그녀가 아버님과 통화를 하면서 아버님이 아직 밥을 안 드셨다는 얘기에 그녀의 화가 다시 폭발했다.

형님에게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시작된 폭언.... 혼자서 내리 떠들어 댔을 것이다.


" 집은 무슨 돼지우리같이 해놓고 살면서 무슨 아버님이 지저분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니? "


그런데 그 와중에 결국 형님한테 욕을 한 것이다.


" 개 같은 년"


알고 보니 온 식구가 장례식장 갔다가 새벽 3시에 와서 늦게까지 잠을 잔 것이었다. 그게 지금 욕까지 하며 화를 낼 일인가 싶다.


이 일을 계기로 형님이 먼저 그녀를 보지 않게 되었다. 이혼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 아주버님은 그녀한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주 후 전화에서 그녀가 한마디 하면서 시작되었다.


" 지금 몇 주나 지났는데 전화 한 통 없고 며느리는 오지도 않고 어떡하자는 거야? 큰애가 먼저 이혼하자 했다며?"

" 욕했다면서요! 녹음 다 해놨어요"

" 그래 욕 한번 했다. 어디 한번 녹음 틀어봐 "

이렇게 아주버님네와 그녀가 싸우게 되면 어김없이 작은아들인 신랑에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소연을 하며 집으로 와달라고 해서 달려가게 만든다.


그리고는 그녀가 신랑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엄마한테 형수가 저러는데 도련님인 네가 '그러시면 안 되지 않냐' 며 따끔하게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니? 전화해 지금! "


신랑은 내가 왜 중간에 끼어야 하냐며 화를 냈지만 결국 전화를 했다.

스피커폰으로 형수한테 얘기를 했고 그러고 나니 그녀는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일이라도 하면 바빠서라도 꼬투리 잡으며 시간을 안 보낼 텐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도 하지 않아 시간이 남아도는 그녀이다.


나중에 나는 형님한테 신랑이 진심 아닌 거 아시지 않냐며 그녀 때문에 시켜서 한 거라고 달래 드렸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아주버님과 싸우면 며칠 후 아주버님이 풀다 보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아주버님은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이 연락을 하지 않자 나중에는 그녀가 먼저 문자로 욕한 건 잘못했다며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리고 아들과 자기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건 다 큰며느리 탓이라 굳게 믿었다. 입이 가벼워 자기가 혼내면 그대로 아들한테 이른다며 더더욱 형님을 미워했다.



그리고 그날을 계기로 더 이상 아주버님네는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없어졌다.


그녀가 허리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아주버님은 한번 왔었지만 그 이후에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형님네가 먼저 멀어져 갔다. 그러면서 그녀와 관련된 일은 둘째인 우리가 다 해야 했다. 나도 항암 중이라 작은 아들인 신랑이 그녀가 입원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돌봐야 했다. 항암 중에 미각을 잃어 맛도 못 느끼면서도 난 반찬을 여러 개 해서 신랑 편으로 그녀의 병원에 보냈다. 그래도 그때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진심으로 반찬을 해서 보냈었다. 그리고 그녀는 병원에서 며느리 자랑을 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었다.


신랑은 형이 자기한테 항상 이렇게 일 저질러 놓고 없다며 싫어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버린 그녀에게는 우리 식구 밖에 없었다.


아주버님은 전화도 받지 않고 그녀의 톡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식구와도 멀어져 갔다. 신랑만 일이 있을 때 형과 통화를 했다. 내가 아픈 걸 알면서도 그 이후로 연락 한번 없는 형님네가 나도 싫었다. 내 마음에서도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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