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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유방암이면 애들도 나중에 걸리는거 아니야?

남보다 못한 가족은 필요 없다.

by graceforme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던 때였다. 이때에도 그녀는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생각 없이 쑤셔 넣었다.


전화 속에서 내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려주는 그녀가 고맙기도 하고 그래도 가족이구나 싶었지만 그 마음은 바로 접어버렸다.


" 주위에 유방암 환자도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도 봤어. 어떡하니...... "


그런 대화 속에서 그녀의 남보다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근데 너 유방암이면 나중에 애들도 걸리는 거 아니야? 유전이 많다던데."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두 딸이 있는 나한테 어떻게 걱정한다면서 저런 말을 던지는지..... 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 아니에요. 유방암 유전은 5% 밖에 아니래요. "

" 그래도 네가 유방암인데 애들도 걸리는 거 아니야? "


그 말을 왜 지금 이 순간에... 세상 다 나한테 등 돌아 서있는 듯 힘든 나한테 던지는 걸까?

그녀는 걱정이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남도 쉽게 못할 말을 그렇게 내뱉었다.

난 병원을 나오며 차 안에서 신랑한테 그 얘기를 하며 많이 울었다. 그때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가 되는 나날이었다. 오히려 남들은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도 조심하는데 오히려 내 주위 가까운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위로가 참 가슴 아팠다.


"유방암은 암도 아니야. 다른 사람 보니까 수술하고 바로 출근도 하던데? "

너무 쉽게 얘기하는 회사 사람들까지 정말 말 한마디에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였다.


하지만 그녀는 잊을만할 때 또다시 되물었다.


내가 수술 후 항암을 견뎌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아주버님네와 멀어진 만큼 모든 관심이 우리 부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툭하면 걱정한다며 전화가 왔고 그날도 다시 시작되었다.


" 근데 너 유방암이면 애들도 나중에 걸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유전은 5%밖에 안된데요."

" 야 너네 아빠도 암이고 큰아버지도 암이고 다 암이라며!! "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걸까.... 진짜 애들이 걸리기라도 바라는 걸까? 아무리 배운 게 없다고 해도 그렇게 사람 도리며 예의범절 중시 한다는 그녀는 왜 기본이 안된 걸까?


두 번이나 날 죽이는 그녀였다. 그리고 아무리 부정을 하려 해도 내가 왜 10여 년의 시간을 거쳐 암에 걸렸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처음 항암 때문에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했을 때 브라카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했지만 항암 만으로도 힘든데 유전도 있다고 나오면 정말 버티지 못할 거 같아 신랑과 안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녀 때문에 열받아서 안 되겠다는 생각에 100만 원이 넘는 유전자 검사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가족 중에 특정암 이력이 있으면 급여가 되어 10만 원 안되게 내었지만 그녀 때문에 하기로 했던 것이다. 3주의 시간이 흘렀고 검사 결과 난 브라카 1,2 유전자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검사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일들 만으로도 머리카락 하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더해주는 그녀인데 또 한 번 정말 시답잖은 일로 또 힘들게 했다.





눈치 얘기가 나온 건 아주버님네와 그녀가 사이가 안 좋아 우리 부부가 그녀를 챙겨야 했던 때이다.

못마땅한 형님 때문에 아주버님과 싸우던 그녀는 똑같이 불같은 성격에 아무 말 대잔치인 아주버님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동생 그러니까 신랑도 마누라 눈치 본다고.......


우리는 그런 얘기를 아주버님한테 비친적도 없는데 혼자 죽기 싫은 아주버님이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마지막 항암을 한 후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때였다. 내 몸 하나도 힘들어 서있지도 못하는데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 그래 몸은 좀 괜찮니? "

" 지금 누워 있었어요. 몸에 힘도 없고 여기저기 아파서."

" 나 너한테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 네 말씀하세요. "

" 너 혹시 아들 눈치주니? "

" 네?"

" 아들 눈치 주냐고... "

" 무슨 눈치요? 제가 뭐 하러 눈치를 줘요"

" 큰아들이랑 안 그래도 니 형님 때문에 전화하면서 큰소리치는데 대뜸 나보고 이러더라. 엄마 때문에 동생도 마누라 눈치 본다고... 혹시 너 나 때문에 아들한테 눈치 주니?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나 때문에 아들이 눈치 본다니까 억장이 무너져서 내가 죽어야 하나 싶어서..."


난 일단 머리를 굴려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눈치를 준다 한들 상식적으로 눈치 준다고 할 수 있나? 뻔한 대답이 나올걸 그녀는 모르는 걸까?


" 참내 아주버님은 왜 갑자기 우리 부부를 얘기해요? 우리가 그런 얘기한 적도 없는데... 눈치를 보면 제가 보지 뭣하러 눈치를 줘요!"


라며 화난 목소리로 아주버님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얘기했다.


참 이걸 나한테 물어보는 것도 어이없는데 나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한번 그녀는 확인사살을 하듯 되물었다.


" 그니까 아니 작은 아들이 나 때문에 마누라 눈치 본다고 하니 내가 마음이 어떻겠니. 내가 죽어야 하나 싶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작은아들한테 눈치 주는 거 아니지? "


"네 아니죠 제가 뭣하러 눈치를 줘요. 눈치를 보면 모를까. "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안심한 그녀는 아주버님과 싸운 얘기를 또 30분이 넘게 하며 큰며느리가 이렇게 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맞장구를 쳐달라고 했다. 그러면 난 항상 형님이 그런 뜻은 아니었을 텐데... 라며 돌려 말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형님이 잘못했고 자기가 맞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 그래 안 그래? 큰애가 이러면 돼? "

라며 나에게 OX퀴즈 같은 명확한 대답을 원했다.


이렇게 작은 며느리, 작은 아들한테도 큰며느리 욕을 꾸준히 하면서 신랑도 형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으로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형님이 말을 옮겨 아들과 자기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며 싫어했다.


그 이후 툭하면 전화하면서 눈치 얘기를 꺼냈다.

" 아니 작은아들이 이렇게 하길래 너 마누라 눈치 보냐고 했지 ~."


그리고 5월 어버이날 연 끊기 전에도 구석 소파에 앉아 있는 신랑을 보더니


" 아들 왜 거기 구석에 앉아 있어!! 꼭 마누라 눈치 보는 것처럼!! "

이라며 끊임없이 내 앞에서 얘기했던 그녀다.



아마도 그녀에게 나는 자기 아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나 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가족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나란 존재는 암에 걸려 아들 힘들게 하고 눈치주며 아들 힘들게 하는 며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가 힘들고 필요할 때는 며느리의 도리를 너무나 바라는 그녀였다. 내가 아프기 일 년 전쯤 그녀가 또 아주버님과 형님 문제로 안 보고 지낼 때였다. 큰아들이 자기를 안 보니 스트레스를 받아 변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점점 심해져 배속에 가스가 가득 찬 상태로 결국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겨진 그녀는 담당 의사가 약만 주고는 아무것도 안 해준다며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의사한테도 퉁명스럽게 얘기했을 그녀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의사는 나가시라고 했고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는 나온 것이다.


그때도 우리 부부만 그녀를 돌봐야 했기에 맞벌이로 다 출근하는 우리는 돌아가며 그녀를 챙겨야 했다. 그래서 집 바로 앞 큰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병원에서 하루 만에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오자마자부터 다시 먹지도 못하고 변을 보지도 못하면서 계속 구토하려고 하며 배가 아프다고 했다.


다시 저녁에 그녀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결국 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신랑과 돌아가며 그녀를 챙겨야 했는데 신랑이 멀리 가게 되면 내가 챙겨야 했다. 회사를 갔다 와서 병원으로 들렀다 왔다.


엑스레이에서는 장에 변과 가스가 가득 차 있었고 변비약을 주면서 계속 움직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변화가 없자 의사는 코로 호수를 끼워서 장까지 연결해 변을 빼내는 기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그 기계를 코로 연결하게 되었다. 난 코에서 나오는 변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의사 회진 때 만나려고 아침부터 다시 그녀한테 갔다. 그녀가 창가 자리에 서있었다. 뒤돌아 서는데 호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 어머니 호수 왜 없어요? "

" 아니 밤새 끼고 있는데 너무 아파서 내가 뺐어."

" 아니 그래도 의사가 하라고 한 건데 빼면 어떡해요?"

" 내가 웬만하면 아픈 거 잘 참는데 너무 힘들어서 뺐다!."


의사도 그녀를 당할 수 없구나 싶었는데 그때 의사가 회진을 왔다. 그전에 나가라고 했던 의사다. 다시 응급실로 들어온 그녀를 보는 것이다.


" 호수 빼셨어요? "

" 아니 여기 코가 다 헐어서 아파서 뺐어요."

" 의사말을 안 들으시면 진료 못해요. "

" 코가 아픈데 어떻게 하고 밤새하고 있어요."

" 나가세요! "

" 네!! "


난 그냥 나가버리는 의사를 쫓아가서 그래도 지금 변이 가득 차있는 상태인데 어떡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의사는 다른 병원 가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있었다.


난 조용히 복도로 나가 신랑한테 전화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편의점을 들렸다가 다시 그녀한테로 올라왔다. 5인실 병실에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녀는 큰소리로 나한테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 아니 뭐 하러 아들한테 쪼르르 전화해 가지고 얘기하니? 아들이 전화 와서 왜 말 안 듣냐고 뭐라 하잖아!! "

" 의사가 호수 빼지 말라고 했잖아요!"

" 그걸 뭐 하러 아들한테 얘기해 가지고!! 저 의사가 이상한 거지 변비약만 주고는 아무것도 안 해주더니 호수만 껴서 코만 다 헐게 하고... 그럼 너라도 아까 쫓아가서 뭐라고 했어야지!!! "


그녀의 짐을 챙기며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병원비를 계산하고 나오니 그녀는 우리 집에 안 가고 자기 집에 가겠다며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차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왔다.


내가 아니라도 어떤 이가 내 자리에 온다 해도 그녀는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상한 걸까?

아프기 전부터 이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그녀였다. 그리고 아프고 나서도 뱀이 혀를 놀리듯 나에게 독을 날렸다.


그래서 내가 아픈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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