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가볍지 않다

아직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

by graceforme

난 1월에 급하게 아이들과 방학 동안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두 번째 자유여행이었다. 날짜는 2월 초였고 설 명절 전이었다. 나에게 이젠 명절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여행의 설렘으로 준비하며 보낸 1월 말...

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아이들과 신랑이 그녀의 집을 가게 되었다. 거의 방문은 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문자 보내고 연락하라며 신랑을 괴롭힌다. 2년 전 그날 이후 아이들이 자고 온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돌아왔고 중학생이 된다며 돈을 아이에게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2월.... 아이들이 무심코 얘기했다.


" 할머니가 아빠한테 얘기하는데 들었어."

"뭔 얘기?"

"할머니 치매 괜찮냐고 "


신랑이 내 얘기부터 친정엄마 얘기까지 다 했구나..... 설마설마했는데 다 하고 지냈다는 걸..


친정엄마는 내가 공황장애로 응급실에 다녀온 후 한 달 후부터 위가 아파 잘 먹지 못해 내시경도 했는데 그리고 몇 달 후 갑자기 환시 환청을 느끼게 되었다. 혼자 집에 있는데 누가 화장실에 있다며 아무도 없는 사진을 보내고 이불이 뭉쳐져 있는 사진을 보내며 개들이 앉아 있다고 했다.


그때 정밀 검사를 했는데 뇌는 정상이었다. 증상으로는 루이소체 치매와 파킨슨병 증상이라고 했다. 아직은 치매가 온건 아니라고 했다. 이번 1년 만에 해본 인지 검사에서는 치매 전단계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 치매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신랑이 그녀에게 다 한 것 같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 근데 할머니가 그랬어 치매 걸리면 빨리 죽는다고 "


아이들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치매 전단계까지 빨리 왔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그녀이다.


그 이후로 난 너무 화가 났다. 아직도 끝없이 그녀는 내 얘기를 전해 듣고 나를 얘기하고 애들 앞에서도 할 말 못 할 말 못 가리며 지껄인다.


그리고 명절이 다가왔다. 해외여행에서 수요일 도착했는데 토,일,월,화,수가 설 명절이었다. 분위기 좋았던 목요일을 지나 금요일 저녁에 신랑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앉았는데 신랑이 혼잣말을 했다.


'명절이 진짜 싫어."


난 속으로 또 그녀가 한마디 했다보다 싶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 할머니 보러 안 갈 거야?"

" 이번에는 그냥 엄마보고 우리 집에 오시라고 하려고"라고 내가 친정엄마인 줄 알고 얘기했다.

" 아니 친할머니...."

"....."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때 난 별일 없음 다녀오라고 했고 아이 들고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또 싸우면 엄마가 데리러 갈 테니 전화하라고 아이들한테 얘기했다.


그다음 날 토요일 일하고 있는 신랑한테 문자를 했다.


" 화요일 오빠네 가자. 고기 먹자는데 "

"ㅇㅇ"


내가 신랑한테 2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에 친정식구와 보자고 한 것이다. 신랑은 바로 답이 왔다.

2년 전 그날 이후로 명절에는 신랑 혼자 시댁에 갔었고 모자지간에 둘이서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전주에 미리 잠깐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아이들 보고 가자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또 얘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과 기분 좋게 신랑은 일요일에 시댁으로 갔다. 이번에도 일, 월, 화요일 명절 당일까지 2박 3일 코스다. 아이들은 심심할까 봐 놀거리를 잔뜩 가져갔다.


다행히 일요일은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월요일에는 묵호항에 가서 대게를 먹고 있다는 아이들의 소식이 들렸다. 난 친정엄마를 불러 둘이서 찜질방도 가고 영화도 봤다. 그리고 화요일이 왔다. 오후에는 신랑이 아이들과 집에 오면 다 같이 오빠네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이한테 문자가 왔다.

" 지금 싸운다. 조심해... 지금 집에 간다."


그때 시간이 11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벌써 보내줄 리가 없는 시간인데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분쯤 지나 아이들이 먼저 올라왔다. 둘째는 울면서 들어왔다. 아빠는 베란다에서 보니 담배를 물고는 주차장 맞은편 정자 있는 쪽으로 갔다.


오자마자 아이들은 얘기하기 시작했다. 설마 또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화요일 아침부터 그녀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이 화장실 불만 안 꺼도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고.... 세수하고 나와 앞머리가 젖어서 나온 아이한테도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며 자기가 우리 집에 쳐들어가서 가정교육을 시켜 줄까라고 했다.


그녀의 패턴은 변함이 없었다. 짜증이 나면 괜히 꼬투리를 잡고 엄한 사람들한테 표출한다. 그녀는 그대로였다.


모든 것은 남의 탓이고 자기를 이겨 먹겠다는거냐며 2년이나 했으면 되지 않았냐고 한다.

이번에 다시 한번 그녀는 확실한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느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을 과거에 했던 것처럼 사람 헷갈리게 당연한 듯 얘기하는 그녀다.




결혼 전부터도 생각해 보면 순탄치 않았다. 우리 집은 불교나 미신을 믿는 집이 아니고 결혼 날짜를 여자 쪽에서 정해야 한다고 해서 손 없는날로 정해 알려줬는데 난리가 났다. 결혼날짜 잡으러 점집이나 철학관에 가지 않았다고..... 그리고는 나도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그런 심정으로 결혼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었고 그냥 연애만 했었다. 그러던 중 몇 달 후 나한테 묻지도 않고 신랑이랑 그녀가 철학관에서 날짜를 잡아 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준비였고 결혼하기 몇 달 전에는 신랑이 찾아와 자기 엄마 생활비를 자기가 다 내고 있는데 결혼하고 안 주면 안 될 거 같다며 생활비를 못주면 결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고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었다.


나도 엄마한테 보태고 있었고 신랑도 보태고 있었기에 결혼하게 되면 둘 다 줄이자고 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고 나보고 결정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신랑이 모은 저축에서 일단 드리기로 하고 결혼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더 조건을 얘기했었다. 근처에 살아도 그녀와는 따로 살겠다고... 신랑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기억은 왜곡되어 있다. 물론 신랑이 나한테 생활비 못주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한건 모른다.

내가 울며 불며 결혼시켜 달라고 해서 자기가 허락을 해줬고 심지어 신혼이 지나면 자기를 모시기로 했다고...

오히려 결혼을 할지 말지는 내가 정해야 했는데 말이다.


신혼 초에도 한번 나를 혼내면서 자기를 모시기로 하지 않았냐며 너희 집으로 지금 들어갈까? 라며

그랬어 안 그랬어!!!라고 나를 다그친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무섭고 어려서 작은 소리로 "네..."라고 했었는데 그걸 지금까지 얘기하는 그녀다. 신혼 때도 왜 저런 말이 나왔는지... 도대체 신랑은 뭘 어떻게 얘기했길래 그녀가 저렇게 생각할까 싶었다.


그리고 아주버님이 아버님을 모시면서 나한테 그녀를 잘 모시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또 했다. 난 아픈 이후로 아주버님을 뵌 적도 없다. 그전부터 아주버님네도 그녀와 싸우고 보고 안 보고를 반복하는 상태였다. 나랑 얘기한 적도 없는데 그녀는 아주버님이 나한테 자기를 잘 모시라고 했다고 기억을 왜곡하고 있다.

소름 끼쳤다. 나르시시스트의 기억 왜곡으로 가스라이팅한다는 특징까지 너무 똑같았다.





내 기억 속에도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그녀다. 그리고 결혼시켜 달라해서 허락해 줬으면 자기한테 잘해야 한다고 떠든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한테도 자기 안 볼 거면 아빠랑 이혼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애들도 알아야 된다고 하면서 싸움이 크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신랑이 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나가는 아이들한테도 인사하고 가라며 소리를 지르는 그녀이다. 도대체 누가 더 예의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15분 거리에 살면서 2박 3일을 보냈음에도 꼭 명절 당일날 간다고 뭐라고 한다. 자기네 집에 안 올 거면 친정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렇게 명절이 다시 지옥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회복은 빨랐다. 어느 정도 우리는 그녀를 무시하게 된 것 같다. 마음이 단단해진걸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신랑보고 집에서 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친정엄마와 함께 오빠네로 갔다.


오빠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신랑은 아무렇지 않게 예전처럼 행동했다. 물론 내가 명절에 있었던 일을 아는 건 녹음파일과 아이들이 전해준 이야기라서 신랑한테 들은 건 없었다. 하지만 내 맘속에서는 그녀의 잘못된 기억도 고쳐주고 싶고 앞으로 내 얘기도 친정얘기도 하지도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쉽게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잠을 못 잤고 새벽 6시 반쯤까지 눈떠있다가 집 앞 공원길로 나가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혼 때 처음으로 다리밑에서 울었던 곳으로 가봤다. 그때는 친정엄마한테도 말 못 하고 내가 진짜 잘못한 건가 싶어 혼자 끙끙대면서 다리밑 벤치에 앉아 울었었다. 근데 그 자리에 다시 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 그때처럼 울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뛰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새벽 시간대라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난 탄천길을 뛰면서 막 소리를 쳤다. 그리고 내가 아는 욕은 다 질렀다. 탄천길 건너편 공원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번 뛰어가며 그녀에게 막 욕을 했다. 욕이 몇 개 더 생각났는데 그때쯤 저 멀리 사람이 보였다. 이렇게 뛰고 소리치고 욕하고 나니 난 괜찮아졌다.


내 인생을 갉아먹는 존재는 안 보는 게 답이다. 그게 부모일지라도 말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예의는 있다. 그 선을 넘는다면 부모 자격이 없기에 견디면서 계속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나의 아빠.... 그리고 그녀이다.


하지만 또 이런 일을 겪게 된 아이들한테 미안함이 크다. 아이들도 그녀를 싫어하고 이젠 상관하지 않지만 나처럼 어느 날 문뜩 그녀가 나를 멱살 잡으며 쫓아왔던 기억이 떠올라 공포에 휩싸였던 것처럼 아이들도 어느 날 오늘의 기억으로 힘들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젠 아이들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녀가 아무 말이나 던지며 발광하지만 이제 더 이상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것이다. 그녀를 미치게 하는 방법이다.



" 무시 "


어제도 난 정신과를 다녀왔다. 선생님에게 명절ㅇ디 일을 전하고 받은 솔루션은 "무시"였다. 그냥 인연을 끊으세요 라며 한마디로 얘기하신다. 인연을 끊으면되는데 왜 잘 살고있는 우리가족이 모진말을 들으며 힘들어하냐고 하셨다. 우리끼리 잘 지내면 된다고 하신다.


끊고 싶은데 끊어지지 않는 굴레.... 정말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그녀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예의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한테도, 자식한테도 갖춰야 어른다운 어른인 것이다.


아직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으로 우리 가족은 한 번씩 고통받고 있지만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내 글을 보는 독자들은 우리가 답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닌 이상 누구도 나를 이해하고 정답을 줄 수는 없다.


이렇게 또 명절이 지나가는데 마음은 한결 가볍다. 누구 탓할 것도 없이 그녀 스스로가 아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끈질긴 동아줄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녀에게 세상은 "고립"이라는 벌을 내려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직 끝나지않은 시집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