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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Mar 13. 2023

생일이라는 것

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생일 전 주말에 생일 파티를 크게 열려고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술집으로 불러서 모두의 축하를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20대 때의 어느 생일날처럼. 생일을 열흘 앞으로 앞두고 친한 친구들하고만 소박하게 보내려고 마음을 바꿨다가 그마저도 취소했다. 결국 나름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 생일 당일인 내일 퇴근하고 가장 친한 친구 1명과 친구 커플 총 넷이서 저녁을 먹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특별히 축하할 일이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축하해야 할 일인데 굳이 생일이 되어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문득 더 이상 만 나이로도 앞자리가 2가 아니게 되었던 몇 해 전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이 나이의 나 자신을 부정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부정하며 절반의 분노와 절반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 나이에 이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이러고 있는데 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20대 때의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나는 여전히 스물다섯의 나 자신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데 왜 나이만 바뀌었는가.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왜 숫자가 올라갈수록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 사회의 잣대가 달라지는가. 


무튼 그 혼돈의 시기를 지나고 안정의 시기가 찾아와 나름 이 나이에 적응하며 살고 있었고, 그래서 생일파티도 하고 싶었다. 참고로 아주 친한 친구들을 제외한 친구들은 나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이 나이가 부끄럽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충분히 동안이기 때문에 굳이 내 나이를 말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나이를 물어볼 때마다 그냥 '생각보다 많이 많다', '아줌마다' 이러고 만다. '응. 마흔이야.'라고 하면 당연하게도 아무도 믿지 않는데 농담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찝찝한 이유는 진짜 내일모레, 곧 마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친한 언니들이 '자신들은 생일에 나이를 먹는 것에 아무렇지 않다'라고 하길래 "너는 자식이 있잖아! 그럼 상관없지!"라고 말하고 집에 돌아왔다. 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들을 양육하고 있는데 나이가 대수겠는가. 근데 가만히 혼자 생각을 해보니 그들은 자식을 낳아 키우기 때문에 괜찮고, 나는 자식이 없기 때문에 안 괜찮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평생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그럼 매년 생일마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우울해하고 기분 나빠할 것이냐는 말이다. 나는 나이 먹는 것에 괜찮아져야 한다. 매년 이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youth'가 아니어서 유스 호스텔에 묶지도 못할 나이가 됐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자식도 없고, 가정도 꾸리지 않았다. 생활 방식은 20대 때의 그것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말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고, 가끔은 퇴근 후에 매번 다른 친구와 저녁을 먹는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어울려 노는 연령대가 점점 어려진다. 가끔은 내 삶에 약간의 로맨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사실은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좋다. 다행히 아직은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많아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한 살 더 많은 내일부터의 나는 조금 더 성숙하고 의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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