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았다. 어쨌든 서울 안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을 때가 그랬고(원하던 대학 아니라고 자퇴함), 취업했을 때가 그랬고(2년 이상 일해본 적 없음), 한국에서 창업해서 가게 운영할 때도 그랬고(코로나 기간 3년 동안 영업하고 폐업함),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서도 그랬다(1년 6개월 일하고 퇴사. 현재 무직).
물론 내가 쉽게 그만둘 수 있었던 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몇억을 버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만두지 않았겠지. '그래도 난 내 꿈을 향해 떠나고 계속 도전했을 거야!'라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의외로 꽤 현실적인 사람이다. 산의 중턱 이상 올라가지 않고 산기슭 부근에서 어슬렁 거렸으니 쉽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내 맘대로 더 자유롭게 다니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더 나이 들어서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기도 한다. 물론 불안하긴 하다. 꾸준히 수입이 들어오는 안정감과 나 스스로 어디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잘하고 있다는 인정욕구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함과 예민함은 클 수밖에 없다. 한 달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모르는 삶은 가뜩이나 예민한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난 이제 이마저도 즐기는 사람이 됐을 만큼 익숙해졌다.
더 이상 예민하게 굴지도,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지도 않는다. 내년 말이나 내후년에 다른 나라로 이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삶의 불확실함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상상하지 못했던 근사한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어떻게 인생에 좋은 일만 일어나겠냐고? 순진하다고? 나도 인생에 멋지고 기쁜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 아프고, 사고가 나고, 큰돈 나갈 일이 생기는 것은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적으로 살아도 일어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기웃거리며 내 꿈을 향해 최선을 다 할 때 근사하고 멋진 일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의 이 불안정한 삶이 짜릿하기까지 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떠나 훨씬 더 큰 물에서 노는 느낌. 더 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접하면서 나의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 책을 통해 문자로만 접했던 넓은 세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느낌. 근사하고 멋진 일이라는 열매가 맺히도록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는 느낌.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삶은 즐기며 신나고 재밌게 살고 있다. 나와 가장 친한 언니도 현재 한국에서 초등교사를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엄청 영감을 얻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더 큰 세계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배울 수 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 없이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한 가지 중요한 건 본인이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 진취적으로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