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이스 Mar 24. 2019

익숙한 듯 낯선

한국에서

어쩌다 보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잠시 지내고 다시 떠날 예정이라 그런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보다는 잠시 낯선 곳에 들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달라진 내 방도, 여기저기 표지판에 쓰여 있는 한글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함께가 아니라면 혼자서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거의 2주가 넘는 시간을 그렇게 집에만 있었다. 

엄마가 때 맞춰 밥도 차려주고 자고 싶은 만큼 잘 수 있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빈둥 누워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고,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마치 경주중인 레이싱카가 중간에 잠깐 멈춰 서서 차 검사를 받는 느낌이랄까? 

일을 할 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막상 그만두고 나면 3일을 못 가 몸이 좀 쑤시고, 마음이 불안해서 결국 한 달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이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처박혀 빈둥대고 있으면서도 조금의 불편한 마음도 들지 않은 건 재정비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 온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처음으로 혼자 밖에 나가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때는 거의 5년을 평일 내내 탔던 버스인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버스 번호와 노선이 헷갈려서 엉뚱한 버스를 타고 길을 더 돌아가기도 했다. 

휴대폰을 개통하지 않아 폰으로 노선이나 길을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지하철에서 잡히는 무료 와이파이는 별로 없었다. 그러다 결국 교대 환승역에서 어느 방향인지 몰라 지하철 두대를 그냥 보내는 일도 겪었다.


수많은 커피 체인점들도 다 예전 그대로라 익숙한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가면 무슨 음료를 주문해야 할지 몰랐다. 메뉴를 봐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고, 적립카드에 열심히 도장을 모았던 시절에 무엇을 즐겨 마셨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한 번은 사진이 있는 그럴싸해 보이는 메뉴를 주문했다가 너무 맛이 없어 반 이상을 버린 적도 있었는데, 그런 맛없는 음료에 5천 원을 썼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결국 어디를 가도 무조건 아메리카노만 시키게 되었고,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각 커피 전문점마다 맛있는 커피 목록을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편의점, 커피 전문점, 지하철 노선...

모두 다 내가 떠날 때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나만 바뀌어 있었다.  

내가 낯설었던 건 오랜만에 온 한국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눈으로 보기엔 너무 익숙한 것들인데 막상 그 안에 속해 있는 거 자체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베이스캠프를 잃은 느낌이 들어 조금 씁쓸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