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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Mar 20. 2019

3. 서로의 영역

익숙한 듯 낯선 곳에서

그전에도 한국에 왔었지만 제주도에 가고, 친구와 서울에서 지내느라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이렇게 오래 머문 게 무려 4년 만이다. 다시 돌아온 내 방은 겉보기엔 그대로인 듯 보였으나, 속속들이 살펴보면 주인 없는 방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 컴퓨터와 오디오는 연결선이 모두 빠져있었고 컴퓨터와 연결해서 쓰던 미디 키보드는 먼지 방지를 위해 비닐에 완벽하게 밀봉된 후 방구석으로 처박혔으며, 오랜 시간 내 보물 1호였던 피아노는 조율이 안돼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겨울옷만 가지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더 한국에서 오래 지내게 되어 추위가 풀리면 당장 입을 옷도 없었다. 


온통 어색한 것 투성이었다. 내가 지내던 집과는 달리 화장실엔 욕조도, 샤워기를 높이 꽂을 수 있는 거치대도 없어 샤워할 때마다 몹시 불편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불편한 것은 집에 식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매번 상을 차리고,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고, 다시 상을 치우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다 큰 딸과 함께 살게 된 부모님도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밥과 빨래를 더 자주 해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정수기의 물이 금방 없어지는 탓에 종종 물을 끓여서 마셔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간 틈틈이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던 내방은 다시 철저하게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같은 이유로 내 옷장에 있던 엄마의 옷도 모두 전셋집 빼주듯 부리나케 이사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닦으려고 보니 칫솔이 젖어 있었다. 

"누가 내 칫솔 썼어!!!" 

아빠 칫솔과 엄마 칫솔을 만져보며 확인해 본 결과, 범인은 아빠였다. 그런데 정작 아빠는 본인이 내 칫솔을 썼다는 사실을 몰랐다. 

집에 도착한 첫날, 엄마가 새 칫솔을 꺼내 주며 '아빠 거랑 색깔이 비슷한데 괜찮겠지?'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그 일이 있고 몇 주가 지나 또 젖은 칫솔을 발견했을 땐 솔직히 짜증이 솟구쳤다. 아빠 칫솔과 내 칫솔을 가지고 아빠에게 가서 따지듯 물었다.

"어떤 게 아빠 칫솔이야!"

아빠는 머쓱해하며 '내가 또 네 칫솔을 썼냐'라고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돌릴 순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칫솔을 다른 곳에 보관했고 누가 내 칫솔을 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의 3년을 혼자서 화장실을 쓰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고, 집에 있는 시간에 주로 거실에 나와서 앉아 있는 게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기분 좋은 어색함이었다. 더 이상 나는 방문 굳게 닫은 그 방에서 혼자 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이들과 함께 이렇게 살았다. 이게 어색하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상황이었다.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익숙했던 것이 오히려 어색해지게 된 그 긴 시간 동안 부모님은 둘이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편하게 사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집에 갑자기 내가 들어왔으니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 굴러온 돌인 나보다 그 자리에 있던 박힌 돌들이 사실 더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하다며 툴툴대는 나와 달리 두 분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하게 함께 살아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혼자 사는 자유는 누리면서 외롭고 싶진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살며 생활비는 아껴도 그들이 나한테 관심 갖는 건 부담스럽다. 걸어서 5분 거리... 정도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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