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혜 Feb 16. 2019

길고양이만 아는 새벽 식당



14년간 꾸준히 문을 연 새벽 식당이 있다. 주 메뉴는 경단밥이지만 계절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캔과 사료의 비율이 환상인 데다 사장님 손맛이 좋아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 네발 손님만 입장 가능하다.




 

가시는 걸음 걸음 피어나는 고양이 꽃  


오랜 길 생활로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익힌 고양이들은 능란하게 모습을 감춘다. 길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날쌔게 도망치는 뒷모습이나 움츠린 등을 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그녀의 발소리만 들리면 은신하던 고양이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민다. 가시는 걸음 걸음 고양이 꽃이 피어나는 형국이다. 이 놀라운 광경 뒤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오세요. 갈길 멀어요.”  


양손 가득 사료와 캔을 챙겨 식당 준비가 한창이다. 배가 고파 개점 전부터 고개를 내민 올블랙 손님 덕에 미애 씨 손이 바빠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 캔 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작게 냥냥 대며 채근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고개를 숙여 확인해보니 턱시도 고양이도 식빵을 굽고 있다. 벌써 여러 손님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소문난 밥집은 웨이팅이 기본이다.  


야무진 손놀림으로 사료에 캔을 얹어 비비면서도 차는 막히지 않았냐, 밥은 드시고 온 거냐 묻는 목소리가 낭랑하다. ‘과년한 처자가 뭘 하나?’ 하며 기웃대는 어르신에게도 낯빛 구기는 법 없이 싹싹하게 인사한다. ‘길 위의 생명을 챙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문하는 그녀만의 방법이다.  





 

자유시간과 바꾼 백 개의 묘생 


미애 씨는 길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파워블로거다. 매일 7kg 사료를 동내는 ‘고양이 식당’을 운영하며 네발 손님들 사진과 이야기를 올리다 알려졌다. 유명해지고 싶어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자꾸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경단밥에 대해 질문을 하고, 겨울에 밥 주는 방법을 물었다. 그녀는 길고양이를 챙기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싶다.  


굶는 생명이 딱해 밥이나 주자고 팔을 걷었지만, 밥이 다가 아니었다. 아픈 녀석이 생기면 들쳐 업고 뛰어야 했고, 목에 방울까지 달고 버려진 녀석을 보며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가고 지금까지 왔다.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강산이 변하고도 한 세월이다.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고, 꼬맹이 조카가 자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그 시간 내내 미애 씨는 길 위의 생명을 돌봤다. 혹한에도, 열이 펄펄 끓어도 식당 문을 닫지 않았다. 오히려 긴 시간 운영하며 식당이 잘돼도 너무 잘돼 1,2,3호점 줄줄이 확장됐다. 물론 사장도 그녀, 서빙도 그녀, 청소도 그녀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담백한 답이 돌아온다. “손님이 기다리니까요.”  


미애 씨 곁에서는 굶주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친 고양이들은 그녀가 나오기 전부터 서성대며 식당 개점을 기다리곤 했다. 눈을 뜰 수 없는 굵은 장대비 속에서 오롯이 비를 맞으며 기다리던 고양이를 본 뒤로는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됐다. 해외여행도, 장기출장도 먼 이야기가 된 것은 물론이다. 그 대신 그녀는 길고양이를 먹여 살렸다. 말 그대로 먹이고, 살렸다. 지금까지 구조해서 입양 보낸 고양이가 백 마리는 족히 될 것이다. 한 줌의 온기를 느끼려다 차에 깔리는 대신, 주인과 함께 뜨끈한 장판 위에서 뒹구는 묘생이 백 개는 더 늘었다는 얘기가 된다.   





 

수명도 늘려드리는 맞춤형 길냥이 식당 


정마식당 4호점에는 생후 3개월이나 됐을까 싶은 아기 손님이 마중 나왔다. 평소엔 경계심이 많아 잘 볼 수 없는 녀석이라고 했다. 녀석의 뒤쪽에는 무늬가 꼭 닮은 엄마 냥이 지키고 있다. 식당을 애용하는 길고양이들은 새끼를 서둘러 독립시키지 않는다. 먹거리가 풍족하니 영역 다툼도 줄어들어 한밤의 고양이 소리도 잦아들었다.  


미애 씨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TNR에 나섰다. 단, 양보다 질이다. 한 마리를 시켜도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NR은 그녀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중성화 수술 이후 방사한 녀석들이 영역 다툼에 밀린 것인지 한 마리 빼고는 전부 자취를 감췄다. 생사도 모르니 억장이 무너진다. 그저 다른 영역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바삐 움직이던 미애 씨가 노란 꽃이 피어있는 화단 뒤에서 손짓한다. 정마식당 ‘별관’이다. 밥 냄새를 맡고 빼꼼 두 얼굴이 등장한다. 선글라스를 쓴 삼색 엄마 냥이와 고등어 태비다. 반가운 손님인지 사장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지점이 너무 많아 한 두 군데 줄여볼까 하다가도 이렇게들 버선발로 마중 나오니 줄일 수가 없다.


고양이 돌보다 연애할 짬도 안 나겠다고 농을 걸자 그녀는 “결혼하면 다 끝”이라고 받아친다. 그렇게 말하며 사람을 웃기더니, 식당 손님들 얼굴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허피스가 온 것은 아닌지, 싸우다 찢긴 곳은 없는지. 콧물을 달고 나타나는 손님에게는 늘 상비하는 가루약을 섞어 주방장 특식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평균 수명은 3년 남짓, 하지만 이 구역 고양이들은 섬세한 주방장 덕에 다들 5살은 가뿐하게 넘긴다.   




 

밥자리를 다 돌고 나서야 그녀는 허리를 편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하며 서로 웃었다. 그것이 미애 씨가 하는 일이다. 길 위의 여린 생명들이 먹고살게 하는 일. 그녀는 말한다. 밥심이 있으면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이 올 거라고.  


인간 친구들의 후원과 사장님의 뚝심, 몰려드는 네발 손님의 문전성시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새벽 식당은 오늘도 성업 중이다. 단, 위치도 영업시간도 비밀이다. 이미 고양이들은 알고 있지만.



<매거진 C 기고 글>


Photo by 엄기태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와 나태천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