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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8. 2022

인생의 빌런들, 상사 편(1)

이쯤이면 악동인 상사들

요즘 영화들은 '빌런'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이전의 작품에서는 악당이었지만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새로운 시선과 사연에 우리는 공감과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빌런의 악한 '행동'만 놓고 볼 때는 다르다. 사연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행동이 있는 반면, 아무리 개인사가 있어도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네 번의 이직을 하면서 수많은 회사 동료, 선후배들을 만났고 내 인생에도 빌런들이 존재했다. 아침밥을 챙겨 오라는 상사, 임원에게는 에이스이지만 동료 선후배에는 최악인 상사가 있었다. 당할 때는 괴로웠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지금의 내게 그들은 그냥 영화 속 악동 수준의 빌런이 되어있다. 괴로웠던 '나'를 빼고 시청자 입자에서 볼 때 만약 충분히 공감 가는 '사연'이 있다면 조금은 눈 감아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상사는 다르다. 바로 가스 라이팅 하는 상사. 타깃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학대하며 본인의 자존감을 올리며 살아가는 인간. '학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밥이 너무 중요한 상사


"우리 모두 일찍 출근하니까 서로 아침밥 챙겨주자!"

아주 좋은 취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팀원들이 그분의 아침밥을 챙겨드리는 게 이 말의 숨은 뜻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 세명의 팀원은 돌아가면서 그분의 아침밥을 챙겨 와야 했다. 당시 아침밥은 엄마가 준비해 주셨어서, 고생하는 엄마께 죄송한 마음에 하루는 초코파이를 가져간 적이 있다. 본인은 아침에 이런 건 안 먹는다고 '밥'으로 가져오라는 답을 받았다. 또 다른 하루는 챙겨간 밥을 싹 다 먹어 놓고 '에휴, 별로다'라고 했다. 우리 엄마가 싸주시는 것을 분명 알았던 사람인데 말이다.


팀 내 소모품 관리를 맡아서 했었는데 어느 날 서랍에 라벨이 하나도 없어서 미리 체크하지 않았다고 엄청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분명 전날에 재고가 200장 있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감쪽같이 없어져 있으니 너무나 황당했었다. 알고 보니 누군가가 쓰고 서랍을 닫을 때 잘못 넣어서 서랍 뒤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속이 너무 상했지만 티를 낼 수 없으니 핑계 대고 점심을 안 먹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너 나 엿 먹이냐?’라며 온갖 짜증을 다 부려서 욕도 먹고 강제로 밥도 먹으러 갔었다. 다른 팀은 라벨 분실 사건도 모르고 평소에 본인 때문에 내가 밥을 안 먹은 걸로 소문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게 엿 먹이는 것이었을까?


정작 본인은 ‘아침마다 팀원들 텀블러에 물 담아주는 상사가 어딨냐?’라고 했었다.


임원에겐 에이스, 동료 선후배에는 최악의 상사


사내외에서 성격이 별로인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품질부서 특성상 생산팀과 의견 충돌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우리 팀은 그 상사분 외에는 대부분 20대였고 생산팀은 3,40대였기에 나이도 경력도 그분들이 우위였다. 당연히 우리가 어떤 올바른 언행을 해도 당장 생산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 생각하면 무시하고 멋대로 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불량이 발생해 이대로 출하하면 100% 클레임인 게 보였다고 하자. 그럼 재작업 해야 하는 생산팀도 생산성이 떨어지니 좋을 게 없고, 우리 팀은 클레임 처리를 해야 하니 곤욕이다. 그래서 막으려 하면 당장 못 나가게 한다고 별 욕을 다 들어야 한다. 심지어 같은 팀 후배는 생산팀장에게 욕설과 함께 뺨도 맞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그 상사는 본인이 해결하겠다고 생산팀에 가서는 더 싸우고 상황만 악화시키고 돌아왔다. 생산팀은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 적당히 알았다고 하고 그 뒤에 생산팀에 간 우리에게 더 나쁘게 굴었다. 그러나 팀장님은 본인이 잘 해결한 줄만 알고 있었다.


야근, 특근이 원래 많은 직무인데 그 상사분은 회사의 모든 일을 다 끌어왔다. 타 팀이 안 하고 미루는 일, 누군가 해야 하는데 서로 미루는 일, 타 팀이 터뜨린 문제들을 모두 우리가 해야 했다. 물론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하는 거니까'하고 이상적인 회사원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 때문에 야근, 특근하는 우리 팀원들을 두고 본인은 쏙 빠지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야근하는 우리를 두고 칼퇴하고, 주말 특근에 나오지 않은 채 임원분들이 찾으면 잠시 자리를 비운 걸로 말해달라고 했다. 위에선 어려운 일 다 가져가서 해결해오니 얼마나 이쁜 직원이었을까?


이 외에도 다양하다. 연차는 월, 금에는 절대 절대로 쓰면 안 되고, 일 잘한다고 아끼는 직원은 우수사원 포상으로 끝내는데 일 대충하고 가끔 아부만 하는 직원은 1년 만에 특급 승진을 시키는 차별을 두는 것도 있었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긴 하나 이야기해 보자면, 회사가 이사를 할 때였다. 품질부서 특성상 수많은 시료가 있는데도 우리 팀만큼은 직접 포장해야 했다. 포장할 박스는 생산팀에서 버려지는 박스를 매일 모아 와서 쓰라는데 문제는 이삿날까지 계산해도 쓸만한 게 잘 안 나온다는 거였다. 그래서 사비를 들여 샀더니 이제 샀다고 화를 낸다. 회사 돈을 쓴 것도 아니고 겨우 몇만 원에 박스 구하느라 일을 못할 수 없으니 산 건데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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