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능력한 쓰레기야. 그런 너를 짓밟고 모욕과 비난을 해서라도 가르쳐주는 나는 천사야. 근데 이런 내가 들키면 안 되니까 집에 갈 때 응원한다고 톡 할게!"라는 상사
매일매일 울며 다음 날에는 깨지 않았으면 하면서 잠드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도록 나를 변화시킨 바로 그 상사이다. 가스 라이팅으로 날 그렇게 만들었다. 인생 클레임 처리 매뉴얼에 이야기한 '경시변화' 건과 '충원 이력서' 건 외에도 에피소드가 수도 없이 많은데 세가지만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제조사와의 미팅에서 ‘신뢰성 테스트’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내 업무 경험을 토대로 해석한 제조사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사용할 필름은 정해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신뢰성 테스트를 한 후 적합하면 바로 적용할 예정이니 조만간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인지 이해하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미팅 후 우리 팀끼리 있을 때 그 상사는 왜 멋대로 대답했냐며 화를 냈다. 그들의 말은 '신뢰성 테스트를 거쳐야 어떤 필름이 재발방지에 사용이 가능한지 파악할 수 있어서 아직 정해진 게 없습니다. 한참 후에나 결과를 드릴 수 있겠네요.'라는 뜻이라고 했다. 물론 필름사에 근무해보지 않으면 충분히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운 좋게 이쪽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이해한 거라 '당신이 모르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 즉, '나는 당신을 욕하고 싶은 게 아니다'이라는 의미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본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계속 말을 돌려가며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기를 강요했다.
동료와 함께 타 팀과의 미팅을 준비했다. 며칠간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의견을 조합해 미팅 당일 오전에 보고를 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나 많이 부족했는지 혼나기 시작했다. 물론 부족하면 가르침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늘 문제였다. 보고 후 약 두 시간 정도 혼나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음식 나오기 전부터 뭘 잘 못했는지에 대해 계속 말을 했다. 늘 그랬듯이 한심하고 쓸모없는 인간들이라는 식으로 이어졌고 점점 더 심해지던 중 밥이 나왔다. 본인은 먹으면서 우리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태도. 게다가 우리가 먹지 않으면 또 본인 탓이 되니, 너희도 먹으라며 자꾸 권유하지만 그 말속엔 '눈치 없이 먹으면 넌 그걸로도 대차게 까일 거니까 알아서 해라'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결국 우리 둘은 돈까스 한 입을 베어 문 게 다였다. 점심 이후 들어간 미팅에서 필요한 내용은 우리가 준비한 것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충분한 내용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독감에 걸렸을 때가 하필 그 상사와 일할 때였다. 전염 가능성 때문에 7일간 출근할 수 없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전화를 했다. 침묵이 이어지다 '그래 알았어. 잘 쉬고 나와'라고 하는 그 목소리에는 (그동안의 언행+전화 속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알 수 있기에)너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느껴라', '지금 사람들도 있고 하니 일단 말로는 괜찮다고 하겠으나 처신 똑바로 해라.'였다. 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없었다. 일 처리할 사람이 없고 괴롭힐 사람이 없는 게 걱정일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대로 출근하지 않으면복귀 후 내내 트집을 잡을 게 뻔했다. 결국 마스크를 쓰고 택시를 타고 다음날 출근을 했다. 그 몸으로 왜 왔냐며 엄청난 (미련한) 의지라고 칭찬하며(비웃으며) 만족해하는 것을 보았다.
워낙 이런 상사들만 만나다보니 '저 위치에 가면 다 저러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퇴사한 회사에서 진짜 '리더'인 상사분을 만나며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분 덕분에 혼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진짜 나 혹은 회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가장해 본인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인지가 아주 잘 구분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언행인지 더 잘 알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오해한 거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