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사라지고서야 마음을 놨다
책임감 내려놓기
내 동생은 내 마음속에서 두 번 사라졌다.
첫 번째는 어릴 때부터 아프고 연약해서 보호해야 하는 동생, 두 번째는 철이 없어서 보호해야 하는 동생.
사춘기의 그 어느 날, 갑자기 내 동생의 얼굴은 나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분명 작고 약해 보이는 아이였는데 어느새 눈높이가 최소 10cm는 높은 큰 아이가 있었다. 물리적인 보호가 필요한 동생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래도 나보다 키만 큰 내 동생은 내게는 여전히 철없는 동생이었다. 흔한 K-장녀가 내 모습이었고 당연히 우리 집은 내가 살려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집안을 살리겠다며 가게를 차린 동생을 도우며 사장님이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열심히 하는 모습은 정말 대견했다. 하지만 존경스러운 게 아니라 대견하게 느꼈다는 것은 당연히 나는 동생을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런 동생이 올해 또다시 사라졌다.
올해 초, 나는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하고 임금까지 체불된 채 백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사정상 지방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가 때마침 내가 백수가 되자마자 본가로 돌아오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막내, 강아지가 크게 아팠다.
생사를 넘나드는 아이를 보며 실신 직전까지 우시는 어머니. 당연히 사랑스러운 막내도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오직 막내만 신경 쓰고 심각해진 집안 분위기에 속상한 아버지. 목숨만큼 소중한 우리 막내에 마음이 아프고 병원비는 몇백만 원이 넘어가니 백수라 눈치까지 보이는데 어머니를 케어하고 아버지 화를 삭여 드리는 몫까지 해야 하는 나. 우리는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결국 술 한잔 하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후 심각한 다툼은 벌어졌고 나는 다시 인생이 무너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동생마저 퇴근 후 한잔했는지 잔뜩 취해 집에 들어왔다. 취중 대화에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두배로 괴로웠다. 게다가 저 철없는 동생이 아버지와 더 크게 다투기나 하면 어쩌나 너무 불안했다.
그때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누나가 백수라 다행이라고 생각해. 엄마 운전도 못하는데 누나 아니면 그 많은 짐 들고 막내 면회하러 매번 갈 수 있었을까? 약 먹이는 거 그렇게 복잡한데 엄마 아빠가 하실 수 있었겠어? 누나니까 하지. 엄마 막내 때문에 하기 힘든 일들 누나가 다 거들어 주잖아.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 동생 언제 이렇게 컸나, 말도 예쁘게 하네'하고 기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기특하기만 했다. 그리고 동생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요즘 일주일 중 하루만 기쁜 일이 있으면, 그 한 주는 행복한 한 주라고 생각해. 그동안 힘든 거 나는 피했잖아. 이제 우리 가족이 나한테 의지했으면 해. 내가 할게. 병원비 걱정도 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우리 잘 견뎌보자. 이렇게 이번 주는 행복한 한 주 된 거야."
나는 철없던 동생을 그렇게 잃어버렸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내 눈을 가리고 있어 미친 듯 달리기만 하던 나는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넘어졌었다. 그런 내게서 책임감을 가져간 동생 덕에 처음으로 앞을 보고 달릴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동생도 지칠 터, 나눠가질 수 있도록 일어날 준비를 해야겠다.
고맙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