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 윤진의 회사는 원하는 직원에 한해서 가족을 회사에 초청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주로 아이들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이 해당 행사에 지원을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 마술쇼도 하고, 엄마아빠가 일하는 사무실도 보여주는, 몇 안되는 회사의 복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가족행사를 신청하지 않은 직원들은 사무실 곳곳의 회의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헐, 이번에 박 책임 애들도 온거 알아요? 근데 장 실장은 지원 안했데요"
강 책임이 대박사건이라며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장 실장님은 오늘 휴가 내셨잖아요."
"김 책임님은 우리 팀에 온지 얼마 안되서 잘 모르시겠구나. 원래 장 실장이 매번 이 행사를 꼭 신청했거든요. 애들 데리고 와서 우리가 자기 부하라고 얼마나 생색내면서 자식들한테 자랑을 했는지.."
"솔직히 애한테는 미안했지만 장 실장 좀 재수 없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이 주임이 한마디 거들었다.
눈에 훤했다. '인사해, 아빠랑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야.'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한껏 드러내는 장 실장과 그에게 꾸벅꾸벅 인사했을 직원들.
그러고 보니, 윤진도 어렸을때 아빠 회사의 직원들과 야유회 같은 것을 갔었다. 그 자리가 정확하게 어떻게 해서 마련된 자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아빠의 직급이 부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직원이 윤진 아버지보다 부하직원이었을거다. 그때 그들의 얼굴이 어땠던가. 여름이었고, 계곡이었던 것은 기억나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윤진의 아버지는 그 회사에서 50살까지 일을 한후, 결국 명예퇴직을 하셨다. 임원은 달지 못하셨다.
"박 책임이 저번에는 이거 지원 안했었거든요. 근데 이 번에는 했더라고요. 아주 기가 사셨어요"
윤진의 마음 한켠이 왠지 씁쓸해지던 순간 사무실에 드디어 아이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삭막했던 사무실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차니 왠지 낯설었다.
"우와, 여기가 아빠 자리야?!"
박 책임의 아들도 사무실에 뛰어들어왔다.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어 보였다.
"여기서 뛰면 안돼"
라고 말은 하지만 박 책임의 눈에서는 늦게 본 아이여서인지 꿀이 뚝뚝 떨어졌다.
가족한테는 또 저런 표정이었구나, 윤진은 자신도 모르게 박 책임의 표정을 관찰하는 취미가 생겼다.
"어머, 아드님이 예쁘게 생겼다"
이 주임의 말에 박 책임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띄었다.
"이 사람들이 아빠랑 일하는 사람들이야?"
"어,,엉. 인사해. 여기는.."
"나는 아빠 옆에 앉아있는 짝꿍이야"
윤진이 먼저 아이에게 다가가며 인사했다.
"우와, 아빠도 짝꿍이있어?"
박 책임은 아이에게도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 얼른 와서 과자 먹어~"
박 책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강 책임도 아이만큼은 귀여운지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시끄러운 종무식도, 차가운 시무식도 지나고 다시 평범한 월,화,수,목,금들이 다가왔다.
희망의 불씨를 안고 있었던 박 책임은 후배였던 백 책임이 팀장으로 있는 팀의 팀원으로 옮겨갔다. 박 책임이 원한 것인지, 백 팀장이 원한 것인지, 아니면 박 책임이 모셨다던 상무가 발탁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영업을 직접 뛰어야 하는 그 팀의 특성상 해외 출장 및 바이어 접대가 많아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유난히 박 책임만 사무실 자리를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윤진과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쳐도 다시 그 무기력한 표정으로 느릿하게 목례만 끄덕할 뿐이었다.
장 실장은 한참 이직할 곳을 찾는 듯 하였지만 쉽지 않은지 가늘고 기일~게 회사에 붙어있는 편을 택한듯 하였다. 다만 딱히 맡겨진 일이 없어 포털 뉴스 보기로 업무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결국 상무가 불러서 그렇게 일할 사람은 필요없다고 한마디 하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의 업무에 감놔라 배놔라 한마디씩 의견만 덧붙여서 그를 향한 측은지심마저 없애고 있었다.
"사람 진짜 안 변한다니깐요"
강 책임이 내린 조직개편 후폭풍에 대한 결론이었다. 윤진도 결국 끄덕할수 밖에 없었다.
"10년 뒤에 내 모습이 아니길 바래야죠. 아니 그 전에 나가야돼. 다른 길을 찾아야 돼"
얼마 전에도 강 책임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혹은 내 생각이었나.
한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윤진은 그날의 점심시간을 마무리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