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미래(中)

by jyjang

그렇게 접대까지 하며 장 실장이 회심의 카드를 날렸으나, 장 실장의 생명연장은 이뤄지지 않을듯 하였다. 같이 회식했던, 아니 장 실장이 접대했던 영업 상무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게 될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업 핵심 지역인 북미쪽의 세일즈가 영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 실장은 오늘도 날 선 목소리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다가 깨고 있었다.

"박 책임, 이리 와보세요"

사실 박 책임과 장 실장은 동갑내기에 대학도 같은 곳을 나왔다고 했다.

"아니, 품의를 이렇게 올리면 나보고 결재를 하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이럴 땐 화장실이라도 가있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일어나기도 애매하다.

"예산이 지금 2번이랑 3번이 서로 안맞잖아요!!"

날선 장 실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30분동안 울렸고, 박 책임은 그 앞에 한마디 대꾸도 못한채 서있었다.

사무실에서는 늘 무표정한 얼굴이므로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목과 귀가 붉어졌다는 건 그도 꽤나 당황하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이 순간만큼은 사무실의 다른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에이, 수준 안 맞아서 진짜"

장 실장은 입버릇같은 마지막 멘트를 남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윤진의 옆 자리에 털썩 앉은 박 책임을 윤진은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박 책임의 한숨소리와 마우스를 딸깍하는 소리가 윤진의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기획팀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으면, 윤진은 꽤 오랜시간 괜히 박 책임을 신경쓸 뻔했다.


[대외비]조직개편

12월1일, 회사는 이 간략한 제목의 공지문 때문에 시끌시끌하였다.사업본부장 직속이었던 윤진의 조직은 영업 담당 상무 산하의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소문대로 해당 조직의 담당임원은 장 실장이 접대했던 상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고, 장 실장은 결국 '면(免)' 실장이 되고 말았다. 실장은 그날 오후 반차를 썼다.

"김 책임, 이거 먹어"

한참 개편된 조직도를 보고 있는데, 박 책임이 쓰윽 캔커피를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반말도 놀라웠지만 6개월 넘게 같이 일해도 이런건 처음이었어서 놀라서 쳐다보는 윤진에게 박 책임은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박 책임이 회식장소가 아닌 사무실에서 웃었던 적이 있었나? 윤진에게 그의 표정은 매우 낯설었다.

"이제 우리도 더 신나게 일하게 되겠네."

"네?"

"아무래도 영업 담당 상무 밑으로 가게 되면 영업이랑 더 가까이 붙어서 할 일이 많을테니깐. 그 상무님도 내가 케냐에 있을때 아프리카 총괄본부장으로 모시던 분이거든. 내가 잘 알아"

박 책임의 미소에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조직개편이라는게 원래 그렇잖아. 박 책임 같은 사람한테는 희망의 불씨인거고, 장 실장 같은 사람한테는 절망이 되는거지"

회계팀의 윤진의 동기가 내린 조직개편의 정의였다.

"인사팀이야 언제 사람 신경썼나. 그저 CEO 기분에 맞춰 장기판 말을 이리 저리 옮겨대는거지."

결국은 모두가 장기판의 말 같은 존재인게 조직 안에서의 삶인데, 다들 왜 그리 죽기살기인걸까, 그래봤자 다들 현대판 노예 아닌가. 윤진은 조용히 생각했다.

"장 실장처럼 빠르게 올라가는게 좋은건 아닌거 같아. 기일~게 회사에 딱 붙어 먹고 살려면."

그럼에도 길고 안전한 노예 생활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걸 원한다.

"맞아, 노예가 어디가서 밥을 벌어먹고 살겠냐."

"야, 노예라고 하는건 너무 슬프잖아."

조직개편으로 새로 모시게 된 임원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새로운 방향과 지시를 받게 되었으나 사실 삶이 크게 편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회사는 회사였고, 업무는 업무였으며, 사람들은 사람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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