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일 사이에서

복직 후 첫 야근

by Grace Hanne Lee

복직 후 한 달 남짓. 일이 많은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필사적인 노력과 동료들의 배려로 특별히 많이 늦은 날 없이 퇴근할 수 있었다. 집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상사에게 눈칫밥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무를 제시간에 픽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워낙 사람 좋아하는 나는 퇴근 후 가벼운 저녁이나 맥주 한 캔을 좋아하는데, 나무와 사랑하는 남편이 눈에 밟혀 칼같이 집으로 향한다. 종종 지난 일 년간 남편 역시 야근과 회식 등을 최소화하며 집으로 돌아와 나와 나무를 돌봐주었던 것이 생각나며, 감사한 마음이 더해지기도 한다. 실제 내가 처해보기 전 까지는 쉽게 알기 어려운 마음. 복직은 내게 남편을 더 이해하고, 그에게 감사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복직 전엔, 나의 복직으로 인해 나도 여유가 없어지고 스트레스로 예민해져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가득했는데, 또 이런 기능도 있구나 싶다.


그러던 오늘, 첫 야근을 했다. 도저히 업무를 쳐내고 쳐내도 끝이 안보이던 일이 있었다. 대리 직급인 나는 내가 주체가 되어 끌어갈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자료 수합이라던가 맨땅에 헤딩하는 시장조사 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늘과 같이 노가다 작업 등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노트북을 싸들고 가서 집에서 꾸역꾸역 하기도 했지만, 사실 집에 일을 가져가서 하기는 쉽지 않다. 나무가 자는 시간이 일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눈 앞에 집안일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심지어 다섯 시부터 시작된 그룹 회의가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더니, 일곱 시가 넘어서야 겨우 끝나는 분위기가 되었다. 다행히 남편이 칼퇴해서 나무를 친정에서 픽업할 수 있었고,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드디어 밀린 일들을 끝낼 요량으로 야근을 작정하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늘따라 같이 야근하겠다던 팀장님, 부장님은 진한 저녁식사 후 돌아오지 않으셨고, 나 혼자 오롯이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할 수 있었다. 한참 일을 하다 문득 굉장한 상쾌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제품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리는 노가다 중에 노가다 작업 중이었지만, 늘 긴장 상태에 있던 게 탁 풀리고 자유 감과 집중이 올라오는 듯 한 느낌이었다. 돌아보니 이 느낌은 결혼 전 내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시간 보내던 순간 이후로 처음 드는 느낌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도 있다니.


나는 나무가 떼를 써도 이쁘다. 첫사랑이기도 하고, 남편의 말을 빌자면 임계치가 높은 편이라 그런지 이 아이의 행동으로 극한 화를 경험한 적이 없다. 워낙 나무가 순한 아이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또 나는 적막한 혼자만의 시간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화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더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은 참 묘했다. 아무도 없어 무섭기까지 한 빈 사무실에 혼자 집중해 일하는 것이 뭐가 그리 상쾌했을까? 아마 정말 오랜만에 한 가지 일 만 해도 되는, 나름의 보장된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늘 회사에서도 이 사람 저 사람이 부르는 것에 대답해야 한다거나 사장실 바로 앞에 있어 늘 사장님이 공중에 요청하시는 일들에 대답하는 긴장감 등으로부터 해방된 순간. 퇴근길, 나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노라고 보고해야 할 대상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없었으며 짧지만 보장된 나만의 시간이란 느낌이 묘하게 즐거웠다.


물론 일은 스트레스고, 뻐근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 (특히 눈과 손목!)에 일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버리고 택시에 몸을 맡겼지만 그 순간만큼은 감사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나무, 친정엄마의 나에 대한 배려에 감사하고, 이런 깨달음에 감사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긴장과 줄다리기 한가운데서, 이런 소소한 발견으로 하루하루 또 즐거이 버텨보라는 신의 계시쯤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고, 감사해 마지않는 남편의 품으로, 나의 천사 나무가 있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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