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나그네 여, 다닐 행

by Grace Hanne Lee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코로나이기도 하지만, 원체도 화려한 여행사 스타일 여행보다 느리고 가벼운 여행을 좋아해, 주말에 휙 떠나는 강원도나 제주도쯤을 즐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장거리 움직임이 가능해진 7-8개월부터 종종 여행을 다녔다. 워킹맘 워킹파파의 주말은 사실 밀린 집안일과 피로한 몸뚱아리가 전부지만, 주변에서 대단히 부지런하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나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틈만 나면 다닌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충만히 누린다는 것이다. 분명 더욱 자유롭게 어떤 것을 누리고 싶어서 값을 치르고 소유했을 텐데, 돌아보면 오히려 닳아버릴까 걱정과 관리의 복잡함 그리고 이미 소유해버렸기에 떨어지는 관심 등의 묘한 이유로 그것의 가치를 완전히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화문 근처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는데, 항상 점심식사 후 경복궁을 걸었다. 입구에서 일곱인가 여덟 번째 나무는 참 독특하게 생겨서 이름도 지어줬다. 가끔 발권하고 경복궁 안까지 돌곤 하는데, 경복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나만의 스폿이 있다. 한두 해 지나 어느 날, 이렇게 구석구석 아름다운 경복궁에 살던 왕은 참 행복했겠다 싶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이내, 아니, 왕은 이 궁 구석에 뭐가 있는지나 알았을까? 오히려 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느라 근심으로만 가득한 생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리고 보면 궁 구석구석 오가던 궁 사람들이 주인이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 궁을 소유하진 않았을 테고, 궁 안을 맘껏 다니지도 못했을 테니 주인이라 하진 못하겠다. 그럼 수 세대가 지난 오늘날, 이젠 자유롭게 출입도 할 수 있으니 이 시대의 나라 정부가 주인이겠다 싶다가도, 문화재 보존과 관리 등에 치이는 공무원들이 과연 주인일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결국 주인이란 어떤 해석이든 굉장히 제한된 권한의 역할이구나 싶다. 오히려 이 궁을 매일같이 거니는 여행자인 내가 이 궁을 가장 충만히 누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공수래공수거, 천국 소망 등 여러 종교와 성인들은 현세적 삶에 대해 초월적인 묘사를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의 삶을 표방하는 철학이 대개다. 나그네가 두루 다니는 것이 여행이라 한다. 요즘의 낭만적인 의미보단 좀 더 현학적으로 다가오는 어원이다. 나그네는 본디 많이 소유하여 짊어지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간달프처럼 여행자 나그네는 그 특유의 매력이 있다. 나는 그 매력이 ‘삶을 다르게 보는 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자라며 삶에 대해 이런 관점을 가졌으면 한다. 이 자유로움과 삶이 주는 충만한 가치를 누리길 바란다. 특히 낯선 곳의 자연의 모양들을 통해 여유를 배우고 감사를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스스로도 감사와 여유 속에 살고, 주변에도 그런 에너지를 흘려보낼 수 있길 소망한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는 부지런히 여행을 떠난다. 거창한 목적지가 아닌, 적은 소유로 나그네처럼 두루 다닌다.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매체 대신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생을 느끼고 경이로움을 경험하며 벅찬 감동을 누린다. 그것이 내가 이 아이에게 부모가 됨으로써 계승해줄 수 있는 우리 집안의 가치이자 문화이지 않을까, 괜히 의미심장하게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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