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또 조심

닮은꼴 우리

by Grace Hanne Lee

연휴가 길면 꼭 후유증이 따른다. 복귀하는 날에는 밀린 회의와 업무로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퇴근시간이 되곤 한다. 오늘도 일이 한참이나 많아서 한 시간에 한 가지씩은 일을 쳐내야 했다. 그중엔 조금 신중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는데 시간이 급해 우선 넘겨버린 것들도 있었다.


나무는 어린이집에서 3시에 하원해서 근처에 있는 친정집에 머문다. 6시 땡 치면 나는 칼같이 퇴근해서 나무를 데리러 간다. 오늘도 부리나케 퇴근 지하철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바쁜 하루 중 잠시 쉼을 돌릴 새가 난다. 멍하니 지하철에 서있다 보니, 오늘 하루 급히 처리한 일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워낙 하나하나 곱씹고 조심해서 하는 성격인데, 정신없이 처리하고 나니 괜히 맘에 남는다. 마케팅이라는 속도감 있는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조심스러운 내 본성과 달리 살아가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와 밥을 먹고 목욕을 하기 위해 물을 받았다. 오늘은 새로 산 목욕 솜을 꺼내어 주었는데, 나무가 좋아하는 거품이 아무리 잔뜩 묻어있어도 요리조리 탐색만 하고 쉽게 갖고 놀지 않는다. 가만 보면 나무는 새로운 것에 대해 흥미는 갖지만 꽤나 조심스러운 편이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다. 이런 걸 보면 나의 본성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고 재밌다.


나무를 재우고, 남편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다가 오늘 드디어 집주인과 전월세 이야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어쩌다 보니 부동산을 끼고 하는 대신 우리가 직접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 혹시 마음 상하는 일 생길까 긴장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문자 하나 보내기 위해 몇 번이나 지웠다 쓰길 반복하고, 초안을 내게 보내 고민에 고민을 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면, 이 남자도 꽤 나 못지않은 조심성이 있다.


워킹맘이 되어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더욱 가까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때론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구나 싶다.


아이를 재우다 잠이 들어버린 남편 얼굴을 보며, 회사 사람들이 종종 우리 부부가 서로 많이 닮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가족이구나- 새삼 다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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