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사는 이야기

코로나 시대에 워킹맘은 특별한 행복이라고

by Grace Hanne Lee

같은 회사에서 1년 정도 일하다가 나의 퇴사 이후 짧은 연애와 빠른 결혼 및 임신으로 신혼기간도 짧았던 우리는 오히려 요즘 더욱 진하게 붙어지내며 깊어져 가는 듯하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하고, 부모와의 친밀감을 쌓아가는 나무의 이 시기를 코로나로 인한 재택으로 보다 세심한 관심으로 보내는 중이다. 물론 우리 부부의 피곤함은 뼈가 삭는(?) 정도이다.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나는 새벽 5-6시부터 일어나서 일을 하고, 남편은 오전에 아이의 식사와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마친다.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우리 부부는 또다시 일을 하고, 서너 시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간단하게 간식을 챙겨서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에 나가 한두 시간 열심히 뛰어놀고 다시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내가 저녁을 먹이고 욕조에 물을 받아 씻기는 동안 남편은 밀린 일에 몰입한다. 아이가 잠드는 9시. 우리 부부는 다시 밀린 일을 돌아보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아주 잠깐의 휴식을 갖는다. 임신 막달에 다다른 나는 그 길로 나무 곁에서 뻗어 잠이 들고 남편은 늦은 새벽까지 밀린 일을 하다 겨우 나무 방에서 늦은 잠을 잔다. 요즘 우리의 일상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애간장을 녹이는 여우 같은 코로나와 함께한지도 어연 3년 차. 쉴 틈이 없는 우리의 일상은 무릎과 허리 통증, 손목과 발바닥 통증 등과 함께 하루하루 폭삭 늙어가는 기분이다.


이 역사에 길이 남을 팬데믹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첫째와 처음으로 독립적인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밖으로 나가려면 '크', '크'를 외치며 마스크를 찾는 나무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품어보았고, 놀이터에는 뛰어노는 아이들과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들을 외치며 쫓아다니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며, 둘째를 무사히 만나 딱 24개월 차이의 아둘맘 아둘파파가 되어보았다. 어느덧 8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에 들어선 후부터 쭉 임산부 재택근무를 하며 하드코어 한 일 + 육아 + 임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못지않게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나의 남편도 39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인생의 변화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묘사하고 나니, 얼핏 보면 마스크 뒤로 다크서클이 가득한 칙칙한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사실 요즘 남편과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꼭 우울한 느낌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고로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었듯, 이런 특수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중력에 맞게 삶을 꾸준히 살아가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강하고 소중한 중력은 우리의 정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큰 주축이 되어주었다. 이 강한 힘은 코로나 중에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혼자서 잠이 들기도 하고, 두 돌을 앞둔 요즘은 한참 이것저것 말을 시작하는 재미에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새벽녘에 별안간 일어나 어젯밤 읽던 소방차 책을 거꾸로 들고서는 조간신문 보는 어르신처럼 근엄하게 책을 넘기더니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모습은 코로나라는 대단히도 우울한 세계적 전염병의 손아귀와 전혀 무관한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우리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를 핑계로 억울해만 하기엔 우리에게 닥친 오늘과 미래에 대한 미션이 더 강력했다. 우리의 일상 속 대화를 돌아보면 지극히도 치열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 들이었다. 잠깐 소개하면 뭐 이런 것들이었다.


- 오늘 하루,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 우유가 떨어졌으니 장을 봐야겠는데......,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 먹지?

- 지난번 시장조사 건에 대한 피드백은 너무 가혹한데 이걸 어떻게 풀어낸담......?

- 아뿔싸....... 어린이집에 다녀오니 엘리베이터 점검이라니...... 하아

- 나무야 마스크 똑바로 써야지~

- 이번 주엔 양가 부모님 댁에 나무를 맡기고 일에 집중해볼까?

- 오빠 방금 봤어? 올리(둘째 태명)가 발로 찼어! 눈으로 보일 정도로 세게!

- 우리도 리프레시가 필요해! 어떻게든 일탈을 위해 강원도로 출발!

- 오늘 뭐 먹지?

- 집값 이게 실화인가, 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숫자인걸.......

- 아들 둘을 키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 나무야 마스크!

- 나무는 이제 하나 둘 셋 까지 할 수 있는데 왜 금리는 그 숫자에도 못 미치는 걸까?

- 어머 이건 사야 해.

-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아니야 왜 아빠 곰이 뚱뚱하다고 하는 거야? 튼튼해로 바꿔 부르자!) 그으래... 아빠 곰은 튼튼해! 엄마곰은 날씬해! 아니 그러고 보니 왜 엄마 곰은 날씬해야 해? (보통 이쯤 되면 나무가 '시끄럽고 노래나 불러라'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 아니 이 사람은 왜 일을 이딴 식으로 하는 거야, 이러고서 진급은 어떻게 한 거야!

- 오빠 앉아봐, 얘기 좀 해.

-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회사원일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을까?

- 해외여행은 대체 언제부터 갈 수 있을까?

- 나무야, 울지 말고 말로 하는 거야~ (제발)

- 오늘 뭐 먹지?

- 우리 핸드폰 자제하기 노력해보자! 자기 전 책 읽기 연습!....... 어때?....... 오빠?....... 자?

- 나무 쪽쪽이는 언제부터 뗄 수 있는 거지? 배변훈련도 이제 슬슬 시작해야 하나?

- 어머! 곧 부모님 생신이잖아! 이번에는 뭘 해야 할까?

- 오빠, 들었어? 나무가 처음으로 4글자를 말했어! "까까 또 줘" 하고 말했어! (할아버지가 첫 4글자가 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 섭섭하시겠는걸?)

- 나무야 마스크 똑바로 써야지!

- 오늘 뭐 먹지?

- 와....... 계란 값이 미쳤어. 15구 계란값이 호주산 소고기 다짐육 고기보다 비싸.

- 당근 마켓 없었으면 세상은 참 각박했을 거야

- 와...... 어제 빨래했는데 왜 오늘 이만큼이야? 장마에 빨래 지옥은 괴롭다....... 이사 가면 건조기 하나 사자.

- 여보세요? (자기야 나무 좀 잠깐만 조용히 시켜줄래?) 네, 네, 본부장님, 아니에요 말씀하세요. 네.. 네... 그 기획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 같이...... (방문 닫음과 동시에 터지는 나무의 외침) 아↘빠↗!

- (한밤중에 다리에 쥐가 나서 일어나서) 오빠.... 나 다리가... 발이.... 흑흑... 너무 아파... 흑흑.... 으엉 (펑펑 울었다)

- 자기야, 나무 마스크 챙겼어?

- 하나~ 둘~ 셋~.... 뿅! (매일 아침 나무와 산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무가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 위해 외우는 주문)

- 왜 엄마 까투리에는 아빠 까투리가 안 나와? (어라..? 그러게?)

- 오늘 뭐 먹지?


'마스크' 이야기만, '손 씻기'로 바꾸면 코로나라고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물론 저변에 깔린 불편과 불안으로부터 하루속히 해방되고 싶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깔고 앉아 괴로워만 할 수는 없는 바쁜 일상이었다. 사실 요즘 우리 부부는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더 돈독해질 수 있던 것들과 감사할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일 욕심이 많은 우리 부부는 나무의 어린이집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터에서의 발전에 힘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뼈 빠지게 일해서 남의 돈 벌어다 주는 회사의 고질적인 한계에 부딪혀 스트레스를 한가득 안고 퇴근했을 것이고, 그 스트레스는 불가피하게 아이와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나눠지는 저녁시간으로 물들였을 것이다. 워킹맘을 시작할 무렵, 어떻게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을까 우려했던 나의 걱정과 달리 아마도 승진이라던가 회사 스트레스에 아이 기저귀 구매시기도 까먹었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분명 우리 가족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이야기는 그려졌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남편과 나의 재택이 늘어나며 가족 간의 견고함이 더욱 견실해질 수 있던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상은 결국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의 단위이다. 무료하고 지루한 듯하여도 결국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경험들로 채우는 소중한 요소인 일상을, 코로나라는 불청객에 대한 불평으로 채울 것인지, 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작고 소중한 행복과 추억에 감사하며 살아갈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자 그들이 이제껏 살아온 인생의 중력의 크기 정도이지 않을까. 둘째 출산을 앞두며 더 배가 불러오기 전 아이의 배넷저고리를 한차레 세탁하던 중에 지난날 나의 글들이 떠올라 한숨에 읽어 내려갔다. 낯선 것들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시작했던 마음은 어느새 지극히 일상적인 고민들과 하루하루 사는 이야기로 무색해졌고, 그 안에 싹트는 나무와 가정에 대한 사랑은 이 모진 시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단편적인 시절의 글로 묶인 책이지만 이 글을 엮으며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둘맘이자, 코로나 시기에 워킹맘이 된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자녀들과 사랑하는 나의 반려에게 '작고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는 태도'라는 선택을 보여주고 싶고, 그 안에서 '지금 이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이런 마음이 닿아, 지배적으로 잠식하는 전염병의 기운에 맞서 자신만의 중력을 다시 찾는 길에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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