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든 전화는 딸과 아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과 잠겨 드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차분함을 동원해서 “아빠가 오늘 아침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네가 지금 집으로 돌아와야 해. 가장 빠른 교통편을 확인하고 간단하게 따뜻한 옷을 챙겨. 선배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렴.”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엄마.. 엄마.. 지금 뭐라고 했어.. 엄마!” 나는 다시 같은 말을 천천히 몇 번 반복했다. 난 울지 않으려고 한 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음을 우리 셋은 그를 보내고서야 알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새벽, 아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학창 시절 애기를 들려 달라며 조문 온 아버지의 친구들을 붙잡던 아들이 새벽 3시에 혼자 깨어 울고 있었다. 난 아들의 등을 가만히 쓸어안았다. “엄마, 나 억울해! 엄마, 나 너무 억울하고 후회되고. 엄마, 나 아직 아빠한테 배워야 할 게 많아”라고 아들이 울며 말했다.
정작 딸은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엄마와 동생 옆에 묵직하게 서서 밥을 챙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딸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도, 아들이 억울해하는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나는 오래전 부모를 잃은 경험 자니까.
상실의 아픔을 공유한 우리 셋은 남편이 떠난 후 더 친밀해졌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느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 전화와 문자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삶을 격려하고 생각을 나누었다.
어느 날 아이들과 로마서 12장 2절의 성경말씀을 가족 톡방에서 나누었다.
"세상이 당신을 휘둘러 세상의 풍조대로 행하게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선하고, 그분의 모든 요구에 부합되고, 진정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삶 속에서 증명해 보이십시오.”
엄마 톡: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성숙한 모습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우리가 삶 속에서 직접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군.
나이 더 먹은 엄마가 너희들에게 그걸 증명해 보여야 할 텐데 말이야. 매우 어려움 ㅠㅠ
엄마가 엄마를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엄마를 위해 기도해주렴. 나도 너희를 위해서 기도할게.
아들 톡: 엄마를 위해서 기도할게. 나를 위해서도 하구. 참 어려운 일이지만 엄마가 노력해주면 우리가 본받겠지 ㅋㅋ. 고마워~
“엄마가 노력해주면 우리가 본받겠지” 아들의 한마디가 내 마음에 뚝 떨어졌다. 사실 지금 나를 뚜벅뚜벅 걷게 만드는 각오는 “Role model 엄마 되기”다.
남편의 죽음 후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41살에 과부가 된 나의 엄마였다. 나보다 가난했고 나보다 못 배우고 나보다 자식은 3명이나 더 많았던 엄마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떻게 그 삶을 살아냈는지 묻고 싶지만 계시지 않아 물을 수 없고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으셨으니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녀의 삶을 회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며 엄마가 살았던 삶과 그녀가 삶을 대하던 자세를 생각했다. 홀로 된 엄마가 보여준 긍정적 부분도.. 부정적 부분도.. 홀로 된 나에게 배움과 도전이 되고, 생각해야 할 숙제가 된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되새김하는 과정 중 불현듯 내 딸을 생각했다. 절대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내 딸이 나와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내 딸도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인 나와 내 삶을 되새김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 아이는 그럴 것이다. 어릴 적 인형놀이나 소꿉장난을 할 때도 딸아이는 내가 한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딸은 나를 많이 닮았고,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다. 엄마인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쩔 수 없는 딸의 “ Role Model ”이 된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답은 얻기 위해 나는 다른 질문을 내게 던진다.
‘만약 내 사랑하는 딸이 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나는 딸이 어떻게 살길 바랄까?’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찾아가는 답이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답이 될 것임을 알았다.
나는 내 딸이 슬픔 중에도 환하게 웃을 수 있고, 아빠의 유머를 품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너무 오래 슬픔으로 무기력하지 않기를... 힘이 빠지고 다소 느려질지라도 불끈 일어나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회복시켜 나가길 바란다.
상실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들로 인해 감사하고..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가까이 묵상함으로,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진 것들을 찾아내기를 원한다.
적당한 내려놓음으로 삶의 무게를 줄이고 자신이 묵직한 가치를 둔 몇 가지만을 품은 삶을 가볍게 걸어가길 바란다.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함으로 세상에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과거의 기억을 추억하며 슬퍼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사랑을 잃었다 하여 다시 사랑함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 딸이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음으로 성숙하여지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더 사랑하고 더 크게 사랑받는 사람이 됨으로 기쁘고 풍성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소원한다.
엄마인 나는 내 딸이 떠난 사람보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여 자신의 삶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를.. 행복해지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내 딸에게 바라는 삶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삶이며 내 어머니가 내게 바라는 삶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내가 내리는 답이 될 것이다.
몇 달 전 딸에게 “엄마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거 같니?”라고 물었다.
딸은 “응, 엄마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딸에게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잘하고 있다면 그건 너로 인해서야. 슬픈 일이 네 인생에 생기면 안 되겠지만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만약 네가 엄마와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넌 분명 엄마를 기억하게 될 거야. 그때 엄마가 네 옆에 없어도 엄마가 어떻게 이 시간을 살아갔는지 기억해봐. 그 기억이 너를 응원할 수 있도록 엄마는 힘을 내서 지금을 살아가 볼게.”
나는 ‘삶의 고난과 아픔도 신의 선한 인도하심을 통해 성숙한 삶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혹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인생의 아픔 앞에서 ‘나도 엄마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엄마의 응원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