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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Oct 11. 2020

하늘로 보내는 편지

내가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면 너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곤 했었지. 나는 너의 그 미소를 정말 좋아했어. 네가 그 밝은 미소를 보이며 무언가를 부탁할 때면 나는 감히 거절하기가 힘들었지. 나는 너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항상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을까? 

      

너의 환한 미소 같은 맑고 푸른 가을이 다시 왔다.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네가 떠난 후 벌써 3번째 혼자 맞이하는 가을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훨씬 빨리 간다고 하던데 나도 어느덧 시간의 속도 차이를 느낄 정도로 나이가 많아졌나 보다. 하지만 그래서 난 좋아. 시간이 빨리 지나가면 이곳에서의 나의 삶도 금방 마무리되고 나는 너를 다시 만나게 되겠지. 친구가 묻더군, “과연 너의 그녀도 너를 그렇게 다시 만나고 싶어 할까?”라고.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나의 마지막 날엔 틀림없이 네가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었지. 늘 고맙게 생각해. 너는 훌륭한 아내였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 너는 나를 믿고 의지하고 항상 신뢰해주었지. 네가 나를 좋아한 만큼 나도 네가 무척 좋았어. 하지만 그 행복했던 시간은 이제 막을 내렸고 나는 이제 너 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남은 내 인생을 의미 있고 보람차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 나는 그냥 살아있으니까 산다. 젊었을 때의 나는 거창한 목표와 삶의 가치를 따지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살아내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해. 구체적인 삶의 목표나 철학 없이 산다고 해도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인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삶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는 변함없이 성실하게 살고 있으니까. 몸도 건강한 편이고 정신도 건강한 상태야. 나는 내 삶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로 했어. 너는 내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할까? 너는 나를 항상 지지해왔으니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응원해 주었을 것 같아.     


나는 작년부터 무척 바쁘게 살고 있어. 누군가 그러더라고. 혼자 살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것들을 해보라고. 그래서 리스트를 만들어서 해보고 있지. 처음에는 경비행기 파일럿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하늘을 나는 것이 참 멋있어 보였지. 하지만 막상 경비행기 체험 비행을 해보니, 생각보다 심심하고 재미가 없더라고. 첫 체험 비행 후 바로 생각이 바뀌었어. 그래서 경비행기 대신 패러글라이딩 자격증을 따서 혼자 하늘을 날아볼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패러글라이딩을 해보니 경비행기보다는 재미있었지만 이것도 내가 혼자서 취미로 즐기기에는 합당치 않았어. 그리고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따 볼 생각을 했었어. 바다 밑 세계는 신비로운 것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나도 너처럼 물과는 친하지가 않았어. 물속에 들어가면 내 몸이 너무 불편해해서 스킨스쿠버도 첫날 강습을 받고 바로 포기했지. 포기가 참 빠르지?     


모든 것을 다 포기만 한 것은 아니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등산이 되었어. 당신은 숲을 좋아하고 멋진 자연 풍광을 사랑했지만, 몸이 허약해서 등산은 엄두를 내지 못했었지. 나도 결혼 생활 중에는 등산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당신과 같이 산을 다녔다면 당신 몸도 건강해지고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산에 갈 때면 나는 항상 당신과 찍은 사진 배지를 가방에 부착하고 길을 떠나지. 같이 가는 기분이 들거든. 6월에는 당일치기로 설악산을 다녀왔어. 작년에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면서 내가 초보치고는 산을 잘 탄다고 생각했지만, 설악산 대청봉까지 무난하게 하루 만에 다녀오게 될 줄을 몰랐네.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서 우리나라 산은 어디나 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참 좋아했을 소식인데, 너에게 자랑을 하지 못하니 많이 아쉽다. 몇 달 전에는 어찌하다 보니 5주 연속으로 등산을 했어. 계속 이렇게 자주 산행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경치가 좋다는 산은 다 가 볼 생각이야. 우리 같이 멋진 풍경을 즐기자!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사실 등산보다 내가 더 관심을 가지고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일은 따로 있어. 그건 사별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쓰는 일이야. 처음 책을 같이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나는 이것이 우연한 기회라기보다는 필연적인 운명 같았어. 왜냐하면 내가 이 일을 하기를 네가 정말 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글재주가 신통치 않은 나에게 좀 무모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나는 내가 죽지 않은 한 이 작업만은 반드시 마무리를 짓겠다고 결심했었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책의 원고는 이제 모두 완성이 되었고 곧 출판사에 투고를 하게 될 거야. 너는 떠나고 없지만 네가 기뻐할 일을 해내어서 나는 요즘 마음이 흐뭇하다.  

   

결혼 생활을 할 때는 내가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떠나고 나니 네게 잘해준 것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고 못 해준 것만 자꾸 떠오른다. 넌 참 순수한 사람이었지. 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어서 이렇게 일찍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 네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때가 되어 떠난 것 같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내 입장에서는 서글프다. 처음에는 이렇게 헤어질 것이면 애초에 만나지를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나는 너로 인해 행복했고 너를 만났기에 내 삶은 의미가 있고 축복된 것이었어. 지금 나의 마음속에는 너와의 좋았던 추억만이 남아 있다. 그 소중한 추억을 항상 기억하며 살고 싶구나.

      

그럼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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