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미국에 2년 반 살면서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에 기지를 두고 동부 뉴욕과 보스턴 서부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남부 산타페 세도나 올랜도까지 미국을 샅샅이? 놀러 다닌 경험이 있어서 샌디에이고? 응 뭐 그냥 날 좋은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했다. LA공항을 거쳐 도착한 샌디에이고는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다.
일단 날씨! 환상이었다.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었지만 따스한 20도의 기온, 쾌적한 습도, 그리고 어루만져주는 듯한 보드라운 바람의 완벽한 삼박자에 비행의 피곤함은 사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주일 정도 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 도착하자마자 아쉬울정도였다.
지난번 뉴욕의 jfk공항에 내렸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지저분한 공항에서 두려움마저느끼며 당장이라도 인천공항으로 되돌아가길 바랬었는데 말이다.
샌디에이고는 1769년 스페인 군대가 주둔하다가 1821년 잠시 멕시코에게 넘어간 이후 1850년 미국 멕시코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하면서 미국 땅이 된 곳이다.
미국 8대 도시 중 하나로 항공 우주산업과 바이오산업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여름에는 덥지만 습도가 낮고 겨울에도 15~21도를 유지해 4계절 살기 좋은 도시다. 또한 미국의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슬럼화 된 지역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고 하니 깨끗하고 아름다운 첫인상에 이유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날씨가 기분과 건강 그리고 사람들의 성격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샌디에이고는 발을 디디는 순간 호흡을 하면서 내 몸 구석구석이 깨끗해지고 기분이 업되며 웃음이 배어 나오는 곳이었다.
그런 샌디에이고에서, 날씨 외에도 몇 가지 놀랐던 것들이 있었다.
1 화장실
대학교 때 무진장 친하게 지냈던 내 친구 H는 미국에 사는 교포와 결혼해 산호세에 산다. 많은 시간을 붙어 다닌 친구인데, 어느 날은 어떤 남자애가 다가와 '둘이 혹시 쌍둥이냐, 친구들과 내기를 했다, 진실을 알려달라'던 재미있는 일화를 비롯해 수많은 에피소드를 함께한 친구였다. 어쨌든 미국에 오면 만나진 못해도 나 너희 나라 왔다고 항상 연락하는 친구들 중 하나다.
30년을 캘리포니아에 산 그녀의 얘기에 따르면 서부지역은 미국 최고의 리버럴한 주라고 했다.
3~4년 전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매우 흥미로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딸이 대학원서를 쓰는데 성별 체크란에 남/ 녀/ 말하지 않겠다 /성소수자 등으로 세분화돼 있었으며
기숙사 룸메이트 선택란에도 남/ 녀/ 성소수자/ 상관없음으로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또한 화장실과 샤워실도 남녀 구분 없이 사용이 가능한데 여자애들은 오히려 몸에 수건만 두르고 당당하게 나오는 반면 남자애들은 죄지은 사람처럼 바닥에 시선을 꽂고 다닌다는 저세상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웃으며 한편으론 참으로 신기하고도 멋진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캘리포니아주의 공립학교에 다니는 모든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한 성에 따라 화장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성별이 분리된 스포츠팀에도 가입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으로 성전환자 학생들에게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자아 인식에 따른 성별’을 기준으로 화장실과 샤워실, 탈의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주법(AB 1266)을 발효했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을 경우, 여성 전용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하는 경우엔 남성 전용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녀 성별이 분리된 스포츠팀에도 ‘자아인식에 따른 성별’을 기준으로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방해하면 성차별 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매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 등이 비슷한 트랜스젠더 학생 보호 정책을 펴고 있으나, 이를
모든 공립학교에 적용한 주법을 발효하는 것은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공립 초등학교∼고등학교 학생 620만 명이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앞서 캘리포니아는
캘리포니아 공정교육법 (2011년 7월) 이란 법도 이미 발효돼 있었다.
- https://naver.me/Fjjxro4z
"캘리포니아 공정교육법(정식 명칭: 공정하고, 정확하고, 포함적이며, 존중하는 교육을 위한 법, 법안 번호 SB48)은 지난 2011년 7월 14일 법률로 제정된 법안이다.
이 법안의 내용은 (1) 학교에서 성적 소수자와 관련된 주요한 역사를 교과내용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2) 교과 내용에 성적 소수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이 법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2010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여러 명의 성적 소수자 학생들이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 사건들이 있었다. 이런 괴롭힘을 예방하려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법은 미국 역사에서 성적 소수자의 긍정적인 기여에 대한 내용을 교과내용에 포함함으로써 성적 소수자 학생의 고립감을 줄이고 안전한 학교환경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교과내용에 적극적으로 성적 소수자와 관련된 역사와 사실을 실으라는 것이며 그래서 이 법안에는 LGBT 역사 법안(LGBT History Bill)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법에 따라 이제 캘리포니아 학생들은 하비 밀크 같은 인물이나 스톤웰 항쟁 같은 역사를 배우게 된다.
이 법은 성적 소수자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무난히 법으로 제정되었지만, 일부에서는 이 법을 폐기하기 위한 반대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법안들이 물론 세대 간의 갈등과 저항도 불러일으키겠지만 인권과 인간의 측면에서 봤을 때 멜팅팟의 나라 미국이 갈등을 최소화하며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미국인으로 묶는 어려운 발걸음을 떼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역시 미국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고, 그 선봉에 캘리포니아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 팁
솔직히 놀랐다. 팁이 지난 10년 전에 비해 너무 많이 올랐다.
인플레이션 때문인가? 파월 영감님의 금리 인상으로 환율 폭등과 주식 폭락으로 내 주머니도 보통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예전엔 10 ~15프로면 적당했던 것 같은데 최하 18프로 20프로 30프로 중 하나를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샌디에이고가 워낙 부자 도시라 더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택시를 타도 밥을 먹어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켜도 마트에서 초콜릿을 사도... 팁 때문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택시 같은 경우는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면 카드결제가 되고 나중에 15 20 25프로 구간에서
팁을 정해 다시 재결제가 되는데 그것도 원치 않으면 커스터머 팁이라고 내가 정해서 줄 수도 있게 돼있으니 좀 나은 편, 나머진 사람 얼굴 앞에 두고 커스터머 팁을 줄 수는 없었다.
나도 영어만 되면 샌디에이고 아무 데서나 일하면서 팁만 챙겨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3그의 손톱을 보고 리버럴한 도시임을 체감하다.
샌디에이고도 캘리포니아 주인만큼 젊은 사람들의 자유분방함은 리밋이 없는 느낌이었다.
택시를 타고 근처 아웃렛을 갔는데 요즘 랄프로렌 폴로가 여러 변화를 시도를 하면서 다시 핫하게 떠오르는 추세라 폴로 매장을 들렀다. 과연 예쁜 카디건과 스웨터가 가득가득. 딸의 옷을 몇 개 사서 계산대에 갔는데 거구에 장신의 젊은 남성이 응대를 해줬다. 택을 찍고 포장을 하는 그를 가만히 보니 한 뼘 되는 속눈썹을 붙이고 열 손가락엔 5센티가량의 길다 못해 휘어진 색색의 번쩍이는 네일을 붙이고 있었다. 계산대를 두드릴 때마다 긴 손톱 때문에 탁탁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다시금 내 친구가 말한 '가장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주'란 얘기가 떠오르면서 속으로만 놀랐다.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한 그런 긴 네일을 한 아들뻘 친구를 보니 솔직히 웃음도 났다.)
캘리포니아 주민인 친구에게 들은 얘기들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한편으론 참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떤 편견도 해제되는 자유로운 나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만의 모든 개성을 표출할 수 있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받는 나라, 그런 문화는 진정 멋지고 부럽다. 아이들은 보다 열린 세상에서 자라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4 자연 친화적인, 아니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
라호야 코브는 샌디에이고 최고의 부촌이다.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맨션과 주택은 50억 100억이 보통이라 한다.
내가 머문 호텔에서 차로 10여분 달리면 닿는 거리라 안 가볼 이유가 없었다.
아름다운 해변가에 줄지어 뛰는 그룹과 관광객 등이 붐볐다. 하! 그런데 그 해변은 물범과 바다사자들이 사는 서식지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바로 보는 눈앞에서 바다사자들이 수영을 하고 잠을 자고 놀고 있다. 오래도록 있다가 강아지 같은 바다사자가 있으면 금세 친해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갇힌 동물이 아닌 함께 사는 동물을 보며 사는 미국인의 자연 보존과 사랑의 생각은 강요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득될 것 같았다. 물론 샌디에이고는 여러 모로 선택받은 특별한 곳임은 틀림없다.
일광욕 중인 물범~ 자는 모습이 애기같다.
바다 사자와 뽀뽀도 가능한 거리라니...신기할 따름이었다~
라호야 코브의 너른 풀밭에서 공놀이중인 귀염둥이♡
5 미국 속의 스페인
11월 중하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따스한 크리스마스 준비가 이미 한창이었다.
호텔 근처의 SEA PORT 빌리지는 바닷가 근처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대부분의 상점이 크리스마스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스페인의 점령지였던 만큼 샌디에이고는 곳곳에 스페인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다. 샌 디에고, 발보아 파크, 라호야 코브 비치 등 명칭만 봐도 알 수 있고
건축 양식도 그러하다.
이밖에도 가스등 거리, 노천 카페 즐비한 평화롭고
따사로운 거리 곳곳을 다니며 참으로 살기 좋은 도시라고 다시 한번 느낀 곳이었다.
큰 도시가 이토록 인구밀도가 낮은 이유는 아마도
비싼 물가 때문이겠지. 엘에이를 경유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샌디에이고는 두고두고 오고 싶은 보물 같은 곳이었다.놀러 갔다가 살고 싶은 곳은 처음이다.
Ps 마지막으로 놀랐던 일 하나는 슬럼화 된 곳이 하나도 없는 샌디에이고에도 거지들을 이곳저곳에서 본 일이었다. 발보아 파크 벤치, 호텔 주변 그리고 예쁜 카페거리에서 한두 번씩 마주쳐 당황스러웠다. (시애틀이나 뉴욕 엘에이 등에선 놀랍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