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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Apr 13. 2023

바로 너였구나!

 밥 주던 길냥이와의 조우

우리 아파트 지하실엔 길냥이가 산다.

너무 추웠던 올 초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지하실에서  냐~ 하는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밥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입이 짧은 우리 크림이의  기호를 알아보느라 종류별로  사다둔 사료의 대부분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크림이가 안먹는 사료를 한그릇  놔두고 다음날 궁금해서 가보면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꽤 많은 양을 주는데도 늘 비어있는 밥그릇을 보며 흐뭇기도 하지만 직접 냥이를 본 일은 없어서 혹시 쥐새끼나 이상한 벌레?가 먹는건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하루는 나와 격일로 냥이밥을 챙기는 경비아저씨께 물어보니 한 두 마리가 있다고 한다.


음산하고 축축하고 냉기 가득한  아파트의 지하실은  불을 켜도  어두침침하고  너무 무서웠다.  밥 주고 물주는 사이 철제문이 쿵 닫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13일의 금요일 같은 무시무시한 공포영화가 자꾸만 떠올랐다.  가엾은 냥이는 그래도 바깥보다는 추위가 덜한 이곳에서 가득 쌓인 골판지와 폐지 사이에서 잠을 잘까?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었지만 갇혀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너무 커서 밥그릇과 물만 놓고 후다닥  나온다.


이제는 되도록이면  쿠키 산책길에 쿠키를 데리고 가서 준다. 착한 쿠키는 대소변이  급할 텐데도

길냥이 밥 주고 나가자  하는 나의 부탁에 군말 없이

하실에 동행해주곤 한다.

길냥이는 어디선가 밥 주는 나를 보고 있었을 지도  외출 중이었을 수도 있지만 몇 달째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토실토실한 깜장 고양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지하실  계단을 올라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렸던 참이어서 뒷모습을 보고  "쟤구나!"   반가운 맘이 들었다.


"얘!!"하고 부르니 뒤돌아 본다.   발걸음을 멈추고 지그시... 부드럽고 친근한 눈빛에 심쿵했다.

"안녕? 드디어 만났네~내가 너 밥 주는 아줌마야"


" 알아~^^  알고 있어^^. "

왠지 그렇게  반말로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나를  보던 녀석은 그럼 이만~이라는 듯

돌아서  길을 간다.  도망가지 않고 느긋한 걸음으로.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게 와서  비비거나 발라당 드러눕고 곁을주지 않아 또 다행이다.

냥이가  아는 척을  하면  정이 들고 나는 또

애가 타고 걱정되고 슬픈 만  있을까 봐 거기까지가   좋다.

내  인생에 고양이는 크림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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