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크림이의 두 번째 피검사가 있었다. 신장약과 신장처방사료를 한 달 반도 넘게 정말 열심히, 하루도 빠짐없이 먹였고 중간중간 병원에 가서 수액, 마늘 주사, 대사 촉진제 등을 꾸준히 맞았기에 수치가 어느 정도 호전됐을 거라 믿었다. 물론 사이사이 구토를 계속해서 불길한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병원을 자주 가서 그런가, 이 날은 (물론 하악질을 하고 애옹거리며 반항을 하긴 했지만) 얇은 팔에서 수월하게 피도 뽑고 정맥에 수액침도 잘 꽂았다.
피를 뽑아 기계에 넣고 이검사 저 검사를 하시며 선생님은 신부전으로 2년 진단을 받은 고양이가 15살이 됐다든지, 죽을 것 같아 주인이 포기했는데 살아난 고양이 이야기를 중간중간 하셨고 나는 크림이도 그런 고양이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피검사 결과는 전보다 더 나쁘게 나왔다.
꼭 기수를 나눈다면 신부전 3기?(4기가 말기다)
그리고 심각하진 않지만 빈혈도 생겼다.
선생님의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열심히 살리려는 보호자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도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선생님은 약간 주저하다가 말씀하셨다.
".... 음 크림이는 선천적으로 너무 약해서 오래 못 살 가능성이 많아요.. 그러니까 자꾸 피 뽑고 괴롭히지 말고 약 먹이고 가끔씩 수액 맞추며 사는 날까지 안 아프게... 잘 돌봅시다."
막말을 쉽게 하는 선생님이 아닌데, 나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펑펑 울고 말았다. 선생님에게 나는 피곤한 보호자였을까? 크림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문자와 전화로 자주 묻고 자꾸 병원엘 오는 보호자라 희망고문을 했다가 크림이가 냥이별로 떠나기라도 하면 뒷감당이 안된다고 생각했을까? 35년간 수의사로 한길만을 걸어온 그의 얘기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픈 말이었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방밥이 없었다.
울고불고 슬퍼하기만 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크림이가 구토하지 않고 편안하게 아프지 않게 남은 삶을 누리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야 했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신부전 진단을 받은 이후 이미 간병인 모드에 돌입했지만 이젠 보다 적극적이고 직업적인 간병인이 되어야 했다.
먹여야 하는 약도 늘어났고 수액치료를 집에서도 해야 했다.아침에 눈을 뜨면 아조딜이라는 유산균 캡슐약을 먹인다.
그리고 밥을 먹인다. 안먹으면 각종 사료를 권하고 츄르를 묻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먹여야한다...마지막엔 츄르에 크레메진이라는 신장약 가루를 타서 먹인다.
문제는 아조딜... 아조딜이라는 캡슐약을 고양이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가루약은 츄르에 섞어주면 되지만 고양이에게 알약을 먹이는 건 거의 전쟁이다. 쿠키라면 알약먹이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간식에 싸주면 꿀떡 잘만 먹지만 크림이는 어르고 달래서 될 일이 아니었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다방면에서 하늘과 땅차이였다.
고양이 알약먹이기 팁을 인터넷에서 서너 가지를 찾아보고 또 봤다. 어쩔 수없이 힘을 써서 크림이를 안고 입을 벌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목구멍에
캡슐을 던져 넣어야 한다. 그리고 입을 닫고
주사기로 물을 잽싸게 급여한다. 기도로 들어가지 않게 입의 옆으로 주사기를 넣어 쏘아주는데
물이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약을 삼킨다.
약 5~6초의 시간이지만 흠뻑 땀이 난다.
매일 하다 보면 서로가 익숙해질 것이다.
약은 또 하나가 있는데 양질의 유산균. 물에 녹여서주사기로 급여를 하는데 알약보다는 난도가 낮다. 크림이를 잡고 입가에 주사기를 넣고 조금씩 흘려주면 그런대로 받아 마신다.
약먹이는 시간 전엔 늘 즐거운 크림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사.
여러 종류의 신장사료를 단독으로 혹은 섞어서
때론 물에 불려 캔사료를 섞어 최대한 밥을 먹여야 한다. 창가에 앉아 멍 때릴 때,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구루밍을 할 때, 보조침대에 앉아
일광욕을 즐길 때 기분이 나쁘지만 않으면
밥을 손에 담아 권하는데 고맙게도 조금씩은
먹어준다.
밥을 부실하게 먹은 날은 생리식염수 20미리 정도를 피하주사로 놓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남편의 몫이다.
집에서 수액을 놓아야 하는 일에 대해듣고 보긴 했지만 5~6년 후에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집에서 조차 수액을 맞아야 하는 일은 말기로 가는 길목의 처치일 것이다.
이 단계에서 병의 진행이 더 나빠지지 않고 멈춘다면 그래서 크림이가 다섯 살 또는 일곱 살 아니 열 살까지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항상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부활절이라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한다.
더욱 밀착해서 크림이를 돌볼 수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줄기세포로 신부전을 치료하거나 지금 당장 크림이의 체세포를 떼서 한 마리를
더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물론 크림이에게 발병할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고 건강한 크림이 신부전이 안 걸릴 크림이를 만드는 세상이다.
동물을 넘어 인간에게까지도 가능한 생명과학의 발달은 그러나 과학윤리 생명윤리적인 문제들이 파생되기에 아직은 일반인들의 반려 동물에게도 치료나 복제는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학과 윤리의 딜레마가 내가 요즘 듣는 강의내용이기도 하지만 크림이가 줄기세포로 몹쓸 신부전을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아직은
내 고양이문제엔 윤리고 뭐고 작동을 멈추는 엉터리 학생이다.
크림이의 간병인이 된 지 두 달 남짓, 구토소리에 새벽에 깨고 약을 먹이고 알약먹이기와 밥과의 전쟁을 치르는 생활은 몸보다는 마음이 너무 힘들다.
크림이의 상태에 따라 웃고 우는 하루라니.
크림이는 나를 집사이자 간병인으로 그렇게 부려먹고 아예 내 지갑을 갖다 쓰면서도 늘 그렇듯 멋대로다. 조금만 협조해 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