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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May 28. 2023

친정에 다녀왔다.

나는 불효녀다.

크림이가 투병생활을  하고 별이 되고  이후 펫로스에 시달리던  그 두 달반 동안 나는 친정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자동차로 20여분 거리.


물론 엄마를 항상 챙기는 언니 오빠 며느리가 있으니  절대적인 의무감은 없었지만 하여간 나는 막돼먹은 불효녀임에 틀림없다.

빈손으로 가기 뻘쭘해서 남편 선물로 들어온

홍삼을 들고 갔다.

오래간만에 오는 막내딸.  괘씸하다 한마디 안 하시고 엄마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언제나처럼 진수성찬으로 밥상을 차려 놓으셨다.

같이 따라간 쿠키에게 줄 고기도 떼어놓으시고.


엄마는 지난 19년 암수술 후 회복 중이신데 좋은 음식으로 몸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신 듯  요리에 진심이시다. 깨끗하고 좋은 재료를 사서 국 반찬 고기 생선 요리를 하시고 간식도 많이 쟁여두신다.

또 엄마는 인복이 많으셔서 주변에 요리 잘하는 절친이  많아 각종 김치, 물김치 반찬이 쉼 없이 공수 돼온다. 새언니도  일 이주일에 한 번씩 여러 가지   반찬을 해서  엄마를  찾는다.

가끔은 언니와 내게  "딸보다 낫다." 하시는데 반박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 물론 우리 엄마도  좋은 시어머니긴 하다.)


   친정에 가서 밥을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밥도 이름 모를  온갖 야채와 잡곡이 들어있는 데다가 고기 생선 김치 김치찌개  국까지 칠 팔 첩 되는 반찬이 있는데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이건 원산지는 어디고 이건 누가 텃밭에서 키운 무농약 재료고.... 듣는 둥  마는 둥  맛은 싱겁지만 쿠키와 나는 정신없이 먹는다. 

정말 독소가 빠지고 좋은  기운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크림이는 엄마도 예뻐하셔서 나의 눈물을 이해해 주셨지만   찾아뵙기는커녕  오랜 기간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한 건 불효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니, 사무쳤다.

투병하느라 작아지고 마른 우리 엄마.

 어버이날도 크림이 병원 가고 학교 가고 하느라

전화도 못 드리고 카톡으로만 안부  주고받고 계좌로  소소하기 짝이 없는  선물을 드렸을 뿐이다.


"그래 자식 같은 그 이쁜 크림이가 아팠으니...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엄마 보면 울까 봐..."

"가엾어도 명이 거기까진  걸  어떡하니...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걸... 다신 키우지  마라... 마음 아프다."

"....."


엄마는 전화로 크림이의 소식을 전했을 때 같이 눈물 흘려주셨다. 우리 집에서 쿠키 크림이를 봐주실 때 크림이가 식탁에 올라와 누워 있고  부엌 정리 할 때 찬장에 들어가고 했던 게 눈에 선하다고 하셨다.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며 두어 마리를 하늘로 보낸 적이 있는 오빠  역시  너무나 내 맘을 이해해 주었다.  크림이 장례식비에 보태라며 부의금도 주고 한참 맘고생이 심할 거라고 토닥여 주었다.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건 내 탓이 아니다. 유전자탓이다.


집에 갈 때가 되니 엄마가  우리 남편 먹이라며 대여섯 가지의  김치와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친정에 다녀오는 길,  맘이 뒤숭숭하다.

차가 꽉꽉 막혀야 40분,  시간을 잘 선택하면 20여분 걸리는 친정인데  바쁘다고 슬프다고  너무 오래 안 간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다시한번 든다.

젤 바쁜 큰오빠는 매일 30분씩 통화하고 몸에 좋다는 전복 과일을  늘  배달시켜 드리고 나보다  멀리 사는 데도  나보다는 자주 뵙는다.

언니도 반찬은 안 해가지만 엄마의 병원검진 때

 동행을  몇 년째  도맡아 하고 있는데,  막내딸이라고 늘 엄마 사랑을 듬뿍 받은 나는 막상  하는 게 없다는 게  부끄럽다.



그동안  나이가 든다는 건,  육아에서 해방되고 맘껏 여행 가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신 볼 수 없는 이별의 고통을 겪는 일도  많아진다는 것...문득 두려워 진다.

당분간은  (앞으로 10~15년간?) 누구와도 그런 이별을 하고 싶지 않다....


엄마, 좋은 음식 드시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자주 갈게요.


우리 엄마와 귀요미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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