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이 Nov 08. 2021

시집살이, 어디까지 해봤니? 제1편

ㅡ시어머니의 시어머니에 의한 시어머니를 위한

* 이 글의 에피소드는 사실에 기초했으나 인물 장소 상황 등은 모두 허구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시월드; 이 작은 나라에서 링컨의 명언이 망언이 되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시어머니의  시어머니에 의한 시어머니를 위한 며느리'로 바뀌어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서로의 서로에 의한 서로를 위한 가정'을 꿈꾸며 들어온 그녀는 결혼식이 끝나며 깨닫는다. 원만하고 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편을 낳아준 '또 다른 그녀'와의 부드러운 화합이 최우선 순위라는 것을.  그와의 신혼 세계에 당당히 입성한 것이 아니라 시월드라는 이상한 나라에 초대된 것임을.


그녀들만의 대나무 숲


오래전, 뒤늦게 상담을 전공한 선배에게 별안간 연락이 왔다.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는데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자 급히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상담심리사하다 보니 자기처럼 시집살이 때문에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고려하는 여자들이 너무나 많아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상담심리실을 열겠다고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개별상담은 선배가 혼자 하고 집단상담 시 같이 보조자로 참여해 사례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구미가 확 당겼다. 지금은  오랫동안 휴전 상태지만 나 역시 시어머니의 막말에 가까운 언어폭력으로 온 맘에 생채기를 입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남편과 이혼하고 시어머니에게 위자료를 청구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을까.  동병상련할  과거가 있는지라 바로 오케이를 하고 최소 일 년을 돕기로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 남들은 대체 어떤 시집살이를 하는지 엿보고 싶은 천박한 호기심과  나보다 더한 사람을 보며 위로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반년도 채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시누이들 같은 시집 사람들에 의해 이토록 모질고 지능적이며 때론  치사하고 질 나쁜 행위 마구잡이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악했다. 남편의 식구라는 이유로 그렇게 당당하게 남의 마음을 일부러 찌르고 때리고 아프게 하는 이 엽기적인 범죄는 왜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까. 아들이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는

내 아들과 동급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유유상종이라는 말까지 있는데 아들이 같이 사는 며느리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일은  내 아들을 그리 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집단 상담 내내 나는 그 생각뿐이었다. 공감이나 감정이입은 금물인데 이 작업은 하면 할수록  위로는커녕  내 악몽이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나고 지금은 평화로운 내면이 폭풍 속에 휘말리곤 했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생채기는 침잠해 있었을 뿐, 건드려지기만 하면  수면 위로 올라와 폭발하는 것이었다. 결국  남편과 딸아이의 권유까지 더해져 이 일은 스탑 됐지만 선배 언니를 위시해 집단 상담하면서 끈끈해진 몇 명의 동지들은 아직도 모임을 하고 있다.


모임 1

그날은  B를 위해 모인 날이다. B는 얼마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남편이 병원에 있어서 발견도 빨리하고 치료도 빨랐다. 심지어 항암도 필요 없는 수준의 극초기 상태라 우리들은 그녀를 위한 축하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8명이 모임 인원이지만 한 날 한시에 맞추기는 불가능해서 오늘은 다섯 명만 함께 했다.

80세까지 살 경우 세 명 중 한 명은 걸린다는 암. 누구도 안 걸린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병을 일찌감치 좋은 결과로 털어내 버린 것은 행운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B를 위해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죽집으로 정했고 닭죽 호박죽 전복죽을 기호에 맞게 시켜 냠냠 맛있게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근황을 물었다. 주인공이 B인 만큼 나머지 네 명은 그녀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B는 별말 없이 맛있게 죽 한 그릇을 비워냈다. 갑자기 B가 직원 호출벨을  누르고  말했다. "소주 한 병만 시킬게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대낮인 건 괜찮은데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술을.

B는 술을 따라 우리에게 한 잔씩 돌렸다. "나는 안 마실 거야. 너희가 내 얘길 맨 정신에 듣기 어려울 것 같아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리는 다투어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제정신으로 듣고 싶지 않았다.

" 남편 병원에서 치료 못 받을 뻔했어." 그녀는 피식 웃었다.

"...??"  그녀의 남편은 꽤 규모 있는 유명 병원의 의사다.

"어머니가 우리 남편이 창피할 수 있다고..." 작년에 남편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환과 암으로 그 남편의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차례로 돌아가셨는데 시어머니 말인즉슨, 와이프까지 암 투병한다고 소문이 날 텐데 그러면 그 병원 '의사 선생님이신 당신 아드님'이 부끄러울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선생님 집 안은 암환자 투성이라고 수군댈 수 있고 그러면 그 아드님에게 흠집이 날 수 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가며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들 입이 떠억 벌어졌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다 죽다 살아났는데 내가 왜?"

"이 정도면 랭킹에서 밀려나겠는걸?" 늘 자기 시어머니의 엽기 행각이 지구 상에서 최고라며 떠들던 A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에 다들 파안대소했다.


B의 친정은 특정 업계에서 매우 탄탄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집이다. 애인이 있었지만 집 안에서 반대를 해서 선을 보러 나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시어머니 입장에선 그녀 집안의 도움이면 자기 아들을 대학 병원에 남길 만한 재력과 인맥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어서 그녀와의 결혼을 서둘렀다. 생각 좀 해보겠다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다그쳐서 아들과 연을 맺게 했다. 얼굴도 몸매도 평균 이상이니 남편도 호감을 보였고 남편 역시 외모는 나쁘지 않은 미래의 의사니 그녀도 싫진 않았다. 하지만 예비 시어머니가 너무 설치는 것이 늘 맘에 걸렸다고 했다. 조건은 얼추 맞았는데 남자 쪽에서 밀어붙이니 친정에서도 인연인가 보다 해서 6개월 남짓 만나고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 생각엔 '의사 나리' 사위에 친정도 부자니 집 하나쯤은 떠억 해올 줄 알았는데 친정부모님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친정에서 집을 사주기는커녕 전세도 얻어주지 않으면서  삐걱이기 시작한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벌어져 갔다. '외아들' '의사'에게 시집왔으니 '아들 둘'은 기본으로 낳아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다그쳤다. 공부가 삶의 의미요 재미? 인 남편은 배란일에 맞춰서 아들 만들기에 열중했다.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어느 날, "너희 친정 엄마는 속도 좋구나. 아이 생산도 못하는 딸을 시집보내고 두발 뻗고 잠이 온다니?"라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놀라운 건

시어머니에겐 딸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딸 있는 사람이 다른 딸 앞에선 이리도 막돼먹은 시어머니로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친정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까지 챙겼단다. 선물을 받으면 "겉만 보고는

사람 모른다더니, 수준이 참.... "선물 타박까지 했다. 그래도 그녀는 이혼 생각은 추호도 안 했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시술을 받았고 아들 아들 노래 부르던 집에 딸아이 하나 태어나곤 소식이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생기지도 않는 아들 손주 타령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지금 그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됐는데도 아들 손주에 대한 섭섭함을 내비쳤다니, 아마도 그녀의 위암은 원인이 있을 것만 같다. 이만하길 참 다행이다.

벌써 수년 전  일이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여전할까.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크림이의 옹달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