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이 Dec 09. 2021

시집살이 어디까지 해봤니? 제4편

협박 이혼당했던 며느리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상담 보조할 때 깨알같이 적어두었던 그들의 스토리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사이 빠짐없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드는 나의 복닥거리는 감정들이 어디까지 오픈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모임방에서 가감 없이 내 고민을 말했더니 오히려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다들 본인의 이야기를 써달라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많아 100편을 연재해도 모자랄 것 같다.

그러나 사연은 각양각색 100여 개여도 원인과 결과는 비슷하다. 원인은 동서고금과 시대를 뛰어넘는 여자의 질투와 심술, 결과는 죄와 벌.

오늘의 이야기는 며느리의 대나무 숲의 랭킹 1위를 달리는 이야기다.


"TV에  나와  시집에서 구박받은 얘기 늘어놓는 여편네들을 한심하게 여겼었어요. 자기 PR시대에  자기 자랑해도 모자랄 판에 시집에서 구박받은 게 무슨 자랑이 된다고 본인을 다운그레이드 시키는 짓을 할까 혀를 찼어요. 누워서 침 뱉기고 남편 얼굴 먹칠하고 남의 수다에 먹잇감이나 더 되는 일이에요? 근데 그건 결혼 전까지의 생각일 뿐이었어요..."

A는 처음엔 속으로 삭였다. 시집에서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란 게 그 집 입장에서 '내 존재'가 함량 미달이란 뜻이다. 직장에선 꽤 인정받고 어느 곳에 가도 늘 칭찬받던 그녀의 존재가 왜 여기선 맘에 안 드는지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했다.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에요. 내 잘난 아들이 여시에게 홀렸다'는 원초적인 여적여의 감정이 밑바탕에 깔린 싸구려 질투심은 애당초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설명을 하려면 이성과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 없이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배설하는 일이 시집살이인걸" 상담사 언니의 이야기에 속이 확 뚫린다.

오오 정답이다. 맞는 말이다. 설명이란 것도 어느 정도 상식을 탑재한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아닌가.

 

A의 사연은 기구했다.

"저는 강요에 의해 협의 이혼도 해봤어요. 임신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남자 부모와 시누들이 직업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성인끼리의 결혼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오랜 시간 미뤄지는 데 나중엔 부당함이 느껴졌지요. 그래서 둘이 혼인신고하고 살았어요."

 하긴 대한민국에서 성인들끼리의 결혼은 자유다. 그래도 얼토당토 하지않은  상대라면 자식이 있는 나부터도 반대할 것이다. 결혼 시에 조건을 보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인가? 아니 많은 조건을 따져서 해야 하는 가장 필요한 일이 결혼이다.

아이들이 20대가 되고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나 역시 조건을 따지기로 했다. 결혼을 해서 평생 같이하고 싶을 만큼 불같이 사랑하는 조건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 기본 장착하고.

1. 부모님은 화목한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집안의 화목함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그런 집에서 잘 자란 아이들은 결혼 후에도 어떻게 부부 갈등을 해소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2. 건강한가.

치명적인 유전병이 있는지 고칠 수 없는 병을 갖고 있는지 건강검진은 필수다. 신체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3. 부모의 경제적 자립도

부모의 경제적 자립도는 중요하다. '가난하면 사랑이 창문으로 도망간다'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으쌰 으쌰 살아가는 데 도움은 못 줄망정 노후의 효도를 돈으로 바라지는 말아야 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4. 마마보이나 파파보이 혹은 마마걸이나 파파걸은 아닌가.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손가락 까딱 안 하고 키워진 아들 딸은 무력하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정신적 자립이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고 동반자가 있을 때 그 사랑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5. 경제적 자립도

먹고사는 능력과 생활력은 필수적이다.

6. 서로 같은 취미가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반드시 필요하며 사랑이 의리로 바뀔 때 십수 년 이상 결혼생활을 즐겁게 유지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는 조건이다. 운동을 하나 정해 부부가 같이 하거나 공부를 같이 하거나 무엇이든 함께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는 있어야 서로 딴 눈 안 팔고 풍요로운 관계가 지속된다.


위의 여섯 가지는 사실 결혼을 해서 살고 2세를 낳아키우려면 중요하게 따져 봐야 하는 조건이다. 저런 것들을 어느 정도 갖추어야만 예기치 않게 기습적으로 당하는 다사다난한 인생의 풍랑에 뒤집어지지 않고 부부가 두 손 맞잡고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 결혼 상대의 조건이 앞뒤 자르고 '집은 사 와야 한다' 거나 '특정 직업이어야 한다' 또는  '부모 재산이 얼마여야 한다. 내 자식의 뒤를 봐줄 만한 직업의 부모여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은 자식을 좌판에 놓고 파는 일이다.


다시 A의 이야기. 이쯤 되면 남자에 비해 A의 조건이 터무니없어서 당연히 반대당할 만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가 아무리 '며느리의 대나무 숲'이라 해도 다들 언제고 시어머니가 될 수 있는 나이에 무턱대고 며느리 편만 드는 비이성적인 집단은 아니다.

"너무 억울했어요. 나라고 결혼식도 제대로 못 올리고 혼인신고나 하고 살고 싶었겠어요? 이미 외지에 나가 일하는 딸을 위해 소형 아파트를 사줬을 만큼 친정도 경제력이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일하고 있었고, 집안도 남자 쪽보다 좋으면 좋았지 쳐지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 결혼을 했을까.

"바보같이 10년 사귄 연애 상대가 이 남자 친구 하나였으니까요. 아무리 반대해도 내 조건이 어때서... 그런 맘도 있었고 모든 식구가 결사반대한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가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남편도 아버지는 자기편이니 걱정 말라고 어머니만 설득하면 된다고 했어요"

남편은 전문직이었다. 외동아들이었고 커리어 날리는 여동생 두 명이 있었다. 시어머니의 바람은 전문직 아들이 같은 전문직 여자를 만나거나  월세 나오는 건물을 엎은 엄청난 부잣집 딸을 만나는 것이었나 보다. 뭐 자식에 대한 욕심이야 얼마든지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이 꿈꾸는 데로 빚어지는 도자기도 아니고 자식이 부모 욕심대로만 자란다면 누구나 자식을  서너 명 이상 낳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독했고 아들도 엄마의 고집에 등을 돌렸다. 남자 역시 외지로 나와있는 상태였고 둘은 친정의 도움을 얻어 눈물의 결혼식을 조촐하게 하고 혼인신고 후 여자가 살던 아파트에서 살았다.

"뒤늦게 알게 된 시어머니는 당연히 난리가 났죠. 제가 일하는 직장까지 찾아와 머리채를 잡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저는 이미 그곳을 그만두고 옮긴 후였어요."

남편은 중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굳은 결심으로 결혼을 했지만 이후 시어머니의 패악질은 다 막아주질 못했다. 여자는 시어머니에게 불려 다녔다.

"애를 낳을 거야?" 임신한 여자에게 은근히 낙태를 종용하고 괴롭혔다. 맘대로 되지 않자, 아들을 꼬드긴다.

"결혼식을 제대로 시켜줄 테니 일단 이혼을 해라." 임신한 아이가 있는데도 이혼을 종용했다.

상식적으로 결혼식을 뒤늦게 하면 되지 일단 이혼을 하라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 시어머니의 뒤에는 딸들이 있었다고 했다. (시어머니도 딸이 있고 시누이도 딸이 있는데 남의 눈에 피눈물 내고 다들 무사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는 어떤 딸들만 당하라는 법이 있는 걸까?)

"그래서요??? 그거 이혼 협박으로 고소 가능한 일인데." 모두들 긴장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순진한 남녀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 지독한 시어머니의 플랜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40~50대의 우리에겐 훤히 보이는 제안이었다.)

일단 이혼을 시킨다. 결혼식은 절대 안 시켜준다. 그러면 둘이 싸우다가 자존심이 상한 여자는 아이를 낙태한다. 이혼한 것쯤이야 남자에겐 큰 흠이 되지 않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조건을 따져 새 결혼을 시킨다는 빅픽쳐가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20대들에게 할 짓은 아니었다.

"극악무도한 범죄네요."A의 사연은 전무후무한 랭킹 1위다. 어느 누구도 이런 시집살이의 벽을 깬 사람은 없다. "이런 거 일등 하고 싶진 않은데..." A는 울듯 말 듯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A는 정말 이혼했을까? 아이를 갖고 정말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 역시 A를 설득했다. 남편이 우산을 씌워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지만 남편이 돌아서면 그 결혼은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A는 눈물의 이혼을 했다. A 혼자 눈물을 흘렸을까? A의 친정식구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자고 고집한 순간 누구도 그 부당한 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떤 고통이 있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은 무조건 '남편이 내편일 때'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자는 경제력을 떠나 섣불리 이혼하려 하지 않는다. 이혼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여자에게는 춥고 불리한 길이다.

"협의 이혼은 짧고 간단했어요. 판사 앞에서 실은 임신했는데 강요에 의한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남편이 아이는 없다고 하고, 모든 게 합의가 됐다 하니 그냥 바로 오케이 하더군요." 판사를 만난 시간 30초.

"몇 달 후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아비 없는 아이가 되어 내 밑에 있더라고요."

"결혼 생활은 어떻게 유지됐나요?"

남편은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어서  이혼 후에도 같이 살았다. 몇 년 후엔 혼인신고도 다시 했다. 남편도 고집불통 엄마의 말을 믿고 따른 것을 매우 후회했다. 부모의 실체를 마주한  남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뒤통수 맞았다고 자식 뒤통수도 같이 친 부모 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그런데 A 씨는 얼굴에 그늘이 없네요. 이런 사연이 있을지는 몰랐어요." 다들 그게 신기했다.

"일단 친정에서 즐겁게 잘 자랐고 언니들이 많아요. 늘 언니들이 내편이 되어 지지해주고 도와줬어요. 이혼하고 왔어도 엄마도 언니들도 보살펴 줬을 거예요. 또 하나는 아들들이 보란 듯이 잘 자랐어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하다는 시누와 시동생의 애들보다 착하고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시누들은 다들 빗나가는 자식 뒷바라지하다 보니 저에겐 관심이 멀어지고..."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앉아서 친 박수였지만 나는 정말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참 다행이었다.

 


A의 사연을 듣다 보니 나도 십수 년 시어머니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전문직이어야 애들이 공부 잘하는데...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야 애들 자존감이 높은데.."

애들 교육엔 매우 관심 많고 욕심 많고 공부도 많이 한 나는 이 뜬금없는 소리가 너무 웃겼다. 내가 아는 바로는 어쨌든 엄마가 끼고 키우는 아이들이 잘될 확률이 더  높다. 수재 부모끼리의 결합에서 두세명의 아이들이 있다보면 내버려둬도 저절로 모든 지식을 깨치는 신동이 나오기도 하는데 요즘같은 세상에선 어릴 때일수록 엄마의 관심과 정보가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어린 시절 벌어진 격차는 나중에도 쉽게 좁히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어릴 땐 돈이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출발선이 비슷했지만 요즘은 엄마의 관심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 공부든 예체능이든  분야마다 촘촘하게 전문 학원이 넘쳐나고 아이가 잘하는 분야를 일찍 발견하고 지원해주고  발빠르게 움직일수록 격차가 벌어진다.(단 아이의 재능에 따라 그에 맞춰 지원해줄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재능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의대가라고 수과학 학원에 애들 처박아두고 돈만 썼다간 애들이 대학 대신 병원을 다녀야 한다)

어쨌든 시어머니는 그냥 내가 프리랜서에 불과해 돈을 제대로 못 버는 게 맘에 안 든다 한소리 하면 될걸,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확신을 갖고 반복하며  나를 은근히  아니 대놓고  타박했다. 내가 할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어...아닌데..."

내 주변엔 아이들 어릴 때는 엄마가 키워야한다고 별별 직업을 포기한 사람들이 간혹 있었고 나는 아이들 키울 땐 직업에 매여야 하는 슈퍼우먼이 부러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하여간 나는 그 때 시어머니에게 여러번 '속으로'만 물었다.

 '그럼 어머니 자식들은 어머니가 전문직이어서 다들 공부 잘한 거예요?? 어머니 직업 딱히 없었잖아요...'라고.


시집살이의 가해자는 모순투성이에  정치인들만큼 '내로남불'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아들 집에 가서 아들이 밥상을 차리면 가슴을 치고 딸 집에 가서 사위가 밥상을 차리면 가슴이 설렌다. 내 아들 손잡고 온 남의 딸은 이래저래 맘에 안든다고 막말하고 반대하는 건 되는데 내 잘난 딸이 그런 걸 당하는 건 그 시집이 비정상이어서 라고 억울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내 시집살이 얘기는 내 지인이라면 외국인 친구들조차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고 (사실 자라나는 20~30대 아이들의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니) 내가 시집 조카들을 내 아이들과 비교해서 이러쿵저러쿵 쓰고 싶은 마음은 털끝 만큼도 없다. 또한 나는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두고 입방정 떨어본 일도 없고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나 눈감는 순간까지 아이들에 대해서 만큼은 내 자식이고 남의 자식이고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그냥 시어머니한테 꼭 여쭙고 싶은 질문 한 개만 여기에 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싶다.

"어머니... 엄마가 전문직이어야 애들이 공부 잘한다고 하셨잖아요? 지금도 그 생각 유효하신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시집살이 어디까지 해봤니 제3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