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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07. 2021

시집살이 어디까지 해봤니 제3편

아프면 서럽다

며느리의 대나무 숲 멤버 중 D는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자주 아팠다. 늘 소화가 안되고 관절 여기저기가 쑤시고 힘이 없었다. 그녀는 명문대 출신 재원에 향수연구소 연구원도 했었는데 "그거 얼마 버니, 내가 줄게 그만두고 집안일이나 해라." 하는 부자 시어머니의 요구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시어머니의 집 안일은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 집 안일이 아니라 시댁 행사나 시어머니의 즉각적인 부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아 그래서 그 며느리는 연구원의 월급은 약속대로 받았을까? 약속대로 그 돈이라도 받았다면 그녀가 이곳에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가서 일을 해야 맞는 D가 집 안에만 있으니 여기저기 아픈 게 당연했다. 마음의 병은 반드시 신체 이상으로 나타난다. 검진을 아무리 받아도 딱히 나오는 병은 없고 계속 아픈 건 마음 때문이다.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

"그래도 남편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애들 건강하게 크니 참고 살았어요. 근데 몇 년 전, 시어머니 생신날이었어요. 제가 맏이라 저희 집에서 항상 생신상을 차리거든요. 그런데 미역국을 끓이다가 그만 제가 실수로 팔팔 끓는 물을 쏟은 거예요."

듣고 있던 우리는 흡!! 숨을 멈추었다.

"그래도 다행히 제가 순간적으로 피해서 무릎 아래로 다쳤어요..."

모든 준비는 스탑 되고 일단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갔다. 2도와 3도가 섞인 양상. 너무 아파서 정신이 혼미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다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뒤이어 나는 왜 이모양일까 후회하고 한탄만 했어요. 진짜  너무 아팠는데 아픈 걸 느낀 건 그다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너무 착한 '며늘 아가'였다.

아파도 아픈 행세도 못하고 시골에 계신 친정엄마 아시면 난리가 날 것 같아 알리지도 못했다. 눈물을 삼키며 ' 내 탓이요'만 반복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엉망이 됐을 시어머니 생신이 걱정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막내 동서한테 문자가 와있었다.

'형님도 참.. 칠칠치 못하게... 어머님 아버님 노발대발 난리 나셨어요 ㅠ 제가 다 뒤집어썼죠 뭐."

"섭섭은 고사하고 동서와 시부모님에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전해 들은 우리도 모두 다 저쪽 홀에서 날아온 골프공으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멤버들도 이제는 5년에서  10년 이내에 시어머니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진지하게 시어머니의 맘을 헤아리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도 과연 저렇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의 탄생이 매년 시끌벅적하게  축복할 일인가에 대해서는 주관적 견해가 다르니 차치하고라도~ 내 식구와 살 때는 별다르게 챙기지도 않았던 생일을 왜 내 아들의 와이프, 남의 딸이 챙겨주길 바라게 될까. 그것도 딸의 남편인 사위가 챙겨주길 바라지는 않으면서. (딸 상위 시대가 된 지금도 그런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같이 살던 남편, 혹은 자녀들이 깜빡하고 넘어가면 기분에 따라 웃어넘기거나 셀프 기프트 하거나 그것도 아님 친한 지인 붙들고 식구들 험담하다가 넘어가던 일을, 내 아들 하나 보고 다른 별에서 온 며느리에게 보상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까 심술일까.

또한 슐랭이니 핫플이니 인스타나 SNS에  넘쳐나는 수많은 맛집을 두고   생일 내 딸 세대의 어린 며느리가 만든 가정식을 얻어먹는다는 건 상상이 안 간다. 내 생일이나 가족들 생일을 특별한 날 삼아 그런 특별한 곳에 놀러 가서 가족끼리의 우애를 즐기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한가.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괜한 심술보라는 의견이 3분의 2, 외식이 당연하다는 데는 만장일치였다.

또한 가정식을 고집하는 건 세상의 요리연구가나  요리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소비와 경제를 생각해도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 의견, 평소에 늘 집에서 먹는 뻔한 밥, 생일에 기분 좋게 멋진 곳에 서 가족모임 하며 선물을 챙기는 것이 여러모로 즐거운 일 아닐까라는 의견이 100프로였다.

 만에 하나 내 생일에 며느리가 애써 상차림을 하다가 크게 다쳤다면 (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나이에 생일이 뭐라고 내가 왜 그걸 내버려두었을까." 하며 자책을 하고 며느리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 아들의 아내와 내 손주의 엄마를 아프게 한 게 내  욕심때문인 것 같아서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며느리에게  치료비에 위로비를 건네고 한동안 얼굴 보기도 민망할 것 같다.

아 물론,  좀 조심했으면 식구들 모처럼 모이는 날에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들 것이다. 인간이니 가능한 마음. 그리고 매년 시부모님 두 분의 생신상을  멋지고 맛있게 차려내는 (어딘가 존재할) 친구 며느리와의 비교도 할 수 있다.

(단 자신의 일기장이나 친구들  만나서! 아들이나 며느리  모르게 말이다)

 예로부터 엄마 친구의 아들딸은 다 엄친아고 시어머니  친구의 며느리는  능력도 있고 시부모님에게도 잘하는 슈퍼우먼일 테니.


혹시 이후에 D는  시부모님의 위로를 받았을까?  예상대로 아니오! 다.

욕도 아까운 사람들... 며느리의 세상에는 종종 이렇게 기네스북에 사이코패스로 이름을 올릴 만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쯤에서 내 얘기를 빼면 또 섭섭하다. 나는 결혼생활 22년 중 두 번 입원했다.

한 번은 유방의 섬유선종을 암으로 오진해 지옥과 천국을 오간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담낭 절제술을 했다.

물론 암이 보통인 세상에 내 두 번의 수술은 별 일은 아니었지만,  자식이 넷인데 굳이 며느리 콕 찍어서 병원 갈 일 있으면 기사나 간병인으로 부리려는 시댁 식구들(시어머니와 시누이 둘)은 내 두 번의 입원 동안 안부 한번 제대로 묻질 않았다. (시아버지와 시동생 부부는 문병도 왔었지만)




큰 시누의 딸이 초등학교 땐가 간단한 귀 수술을 했을 땐 남편을 통해 가라는 명령이 와서 제법 비싼 레고를 사 가지고 갔었다. 병문안은 남편을 통해서라도 가라 해서 갔는데 와줘서 고맙다는 말은  까치에게도 전해 듣지 못했다. 얼마 전엔 큰 시누가 어디 아프다며 시어머니가 울먹이며  직접 전화해 안부를 물으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이상한 현상이 나는 진짜 신기했다. 딸과 며느리가 이렇게도 분명히 구분이 될까?

 사람들도 밖에서는 '자기' 올케가 당하는 일은 모르고 '남의' 올케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딸 있는 어미' 입장에서 화내고 분노하고 같이 욕해주겠지. 이런 내로남불이 나는 정말 이해가 안 가고 신박하기까지 하다.


나는 언니도 있지만 오빠들이 있어서 올케 입장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딸도 있지만 아들도 있으니 시부모의 입장도 된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말도 안 되는 시부모 노릇을 해서 올케들에게 부끄러운 적도 없지만 만일 그렇다면 언니나 나나 가만있지 않을 것 같다. 올케들에게 물어봐도 (섭섭한 일은 당연히 있겠지만) 이렇게 글감이 되는 에피소드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언니와 내가 올케들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할라치면  오빠들이 가만있질 않고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인 데다가 우리도 각자 사는 게 바빠  사실 관심을 가질 여력도 시간도 없다. 부모님이 아프실 땐 언니나 내가 항상 동행했고 특히 입원 시엔 간병인을 주로 써서 우리 형제들조차 간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엄마는 남의 딸자식 간병을 너무 불편해해서 어쩌면 올케들은 그게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이 좋으신 분이란 얘기가 아니다. 보통  이런 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커나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또, 같은 연배의 친구들  언니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내 자식이 아까울 수는 있지만 내 아까운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을 내 자식 보듯 하자고 우리 대나무 숲 멤버들은 굳은 약속을 했다. 혹시 누가 이 과거를 잊고 남의 자식에게 우리가 당한 대로 하려 하면 우리가 멱살을 잡고서라도 말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럴 것 같지 않은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지금  중장년에 접어든 우리의 삶을 노년까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즐겁게 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느라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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